방황하는 아이들에 ‘희망의 나침반’
방황하는 아이들에 ‘희망의 나침반’
  • 김정석
  • 승인 2014.05.20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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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인물> 요은서당 손재현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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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서구에서 요은서당을 운영하고 있는 손재현(67) 훈장은 서당 운영과 함께 초등학교에서 특강을 하며 아이들의 ‘훈육’에 온힘을 쏟고 있다. 박현수기자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아이를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서는 부모와 형제는 물론 친척, 이웃 등 주변 사람들이 모두 아이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애정을 쏟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한 아이가 어미의 따스한 몸에서 벗어나는 순간부터, 부모 품에 한 번 안기기가 어렵다. 갓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이는 어린이집으로, 이제 말문이 트인 아이는 유치원으로,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부터는 온갖 학원을 다니며 ‘교육’을 받는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교육기관을 전전한다. 오늘날의 부모들은 마치 ‘한 아이를 키우려면 순서에 맞는 교육기관이 필요하다’는 문장을 뇌리에 박고 행동하는 듯하다. 오랜 옛날 우리의 문화도 머나먼 이국의 속담처럼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함께 뜻을 모으곤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교육’만 있고, ‘훈육’은 사라졌다.

요은 손재현(67) 훈장은 대구 서구에서 22년째 서당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훈육’하고 있다. 말뜻 그대로 아이들에게 지식을 전해주는 것보다는 품성이나 인성을 길러주는 데 수십년간 온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오랜 기간 서당을 운영하면서, 손 훈장의 손을 거쳐간 아이들만 수백명에 달한다.

그 중에서는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이들도 있고, 고위공직자가 돼 열심히 나랏일을 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손 훈장은 분명 자신이 그들에게 전한 ‘올바르게 살아가는 법’이 그들 인생에 좋은 나침반이 됐을 것이라고 믿는다.

자율방범대장, 훈장이 되다
가출 청소년들 ‘바른길 인도하자’ 다짐
초소 데려가 천자문 교육…태도 달라져
서당 짓고 20여년간 아이들과 인성교육
탁월한 지도에 학부모·교사들도 호응


◇천자문 읽게 하는 자율방범대장에서 ‘훈장님’으로

손재현 훈장이 대구 서구에 둥지를 튼 지도 어느덧 48년째에 접어들었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세월이 길어질수록 손 훈장은 자신이 지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됐다. 그렇게 뛰어든 것은 지역의 자율방범대 활동이었다.

“그때만 해도 어린이들은 자정까지 모두 집에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자율방범대에서 활동하며 밤늦도록 집에 들어가지 않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귀가시키는 일을 도맡았죠. 그렇게 자율방범대 활동을 하면서 청소년들의 탈선 현장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주로 가출한 청소년들이 놀이터 같은 곳에서 여럿이 모여 담배를 피우거나 다른 아이들을 괴롭하는 것이었죠. 그때마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인성교육’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손 훈장은 2평 남짓한 방범초소에 아이들을 데리고 와 좋은 책을 큰 소리로 읽도록 했다. 손 훈장 자신이 어릴적 배웠던 천자문이나 사자소학이 청소년들 손에 쥐어졌다. ‘하늘 천, 따 지’ 아이들이 큰 소리로 읊는 천자문 소리는 초소 밖으로 흘러나가 이웃들의 귀에 들어갔다. 가출을 일삼고 나쁜 짓을 골라 하던 아이들이 늦은 밤 천자문을 읽고 있으니, 어른들은 놀라워했다.

손 훈장은 아예 초소에 칠판을 걸어두고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소문이 나서 아이들이 한두 명씩 늘어나기 시작했고, 어른들까지 수업에 참여했다. 손 훈장은 ‘수강생’들이 점차 늘어나자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목재소 근처에 자그마한 공간을 마련해 본격적인 수업을 시작했다. 아이들이 30명을 넘어서자 그마저도 좁았다. 손 훈장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자’고 마음을 먹고, 1993년 서당을 지어 자신의 호를 따 ‘요은서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이들에게 사랑을 듬뿍 담아 정성으로 가르치니, 그들이 점차 바른 길을 걷기 시작하는 게 보였습니다. 아이들을 서당에 데리고 와 가르치고 ‘사람 만드는 일’을 꼭 해야만 하겠다고 다짐했죠. 천자문을 가르치고, 사자소학을 가르쳤습니다. 제가 먼저 칠판에 넉 자를 쓰고, 아이들이 글자를 종이 한 장에 빼곡 채우게 했습니다.”

요은서당을 찾는 아이들 중에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많았다. 부모의 이혼으로 한부모 가정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고,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아이들도 있었다. 손재현 훈장은 그들에게 “주변 환경이 어렵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절대 누굴 원망하거나 탓하지 말고,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아가다보면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다”고 말하며 힘을 북돋았다.

◇20년 넘게 이어진 ‘아이들과 함께한 삶’

한때 요은서당에는 100명 가까운 아이들이 수업을 들었다. 지역의 특별한 서당이 언론을 통해 조명받으면서 대구 전역은 물론 다른 지역에서도 아이들이 몰려든 것이다. 당시 손 훈장은 하루에 3시간씩 수업을 했다. 매년 평가대회를 열어 거의 모든 아이들에게 상을 나눠줬다. 상을 마련하는 데 300만원 정도 들었지만, 아이들을 위한 길이라는 생각에 전혀 아깝지 않았다.

“평가대회가 열릴 때면 학부모는 물론이고 지역 국회의원이나 구청장까지 모두 불러모았죠. 아이들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평가대회가 시작되고 아이들이 조를 나눠 천자문과 사자소학을 암송하고 한자 방정식을 설명하면 어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어려운 내용을 아이들이 술술 이야기하니 너무 놀라웠던 것이죠. 보통 3시간씩 진행되는 행사가 잘 없는데, 이 평가대회는 3시간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가버리곤 했죠.”

학교 수업이 주 5일제로 바뀌고,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지금 요은서당에는 아이들을 찾아볼 수 없다. 하루 3시간씩 하던 수업을 2시간으로 줄이고, 매일 하던 수업을 토요일만 하는 것으로 줄이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서 2년 전부터는 정기 수업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손 훈장은 ‘찾아가는 수업’으로 아이들과 만난다. 지난해 내서초등학교에서 매주 특강을 한 데 이어 올해는 내서초와 함께 북비산초에서도 매주 특강을 한다. 어려울 것만 같았던 한자 수업을 워낙 재미있게 풀어내다 보니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손 훈장은 큰 인기다. 게다가 초등학교 교사들까지 특강을 들으며 손 훈장이 어떻게 수업을 하는지 살펴보기도 한다. 20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얻게 된 노하우는 그만큼 탁월했다.

“아이들에게 올바른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마음을 제때 잘 읽어줘야 합니다. 아이가 산만하다고 해서 억눌러서는 안 되죠. 그런 아이는 체질상 끓어오르는 열을 발산해줘야 하기에, 박수를 치거나 춤을 추는 시간을 마련해 열을 발산해줘야 합니다. 그렇게 분위기를 쇄신한 후 다시 수업을 하는 겁니다. 잘 하는 아이는 더 잘 할 수 있도록 상을 주는 것도 아이들이 흥이 나서 공부하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끊임없이 배우고 아낌없이 나누다
아이들 가르치기 위해 어른도 배워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지식 쌓기에 매진
서예·사회복지·자연치유학 등 섭렵


◇“가르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손 훈장은 남을 가르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스스로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매일 아침 일어나 요가를 하고, 108배를 하며 운동을 빼놓지 않는다. 운동을 마친 뒤에는 강의를 준비하거나 책을 읽는다. 살아있는 강의를 하기 위해서 아예 책을 머리에 모두 입력해 버린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신을 쌓는 습관은 어릴 때부터 이어져 온 것이다. 여덟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손 훈장은 부친에게 배운 것들이 삶을 살아가는 데 큰 이정표가 됐다고 말한다.

“선친은 ‘집을 나설 때는 선비처럼, 일을 할 때는 일꾼처럼’ 생활했습니다. 교육열도 높아서, 어릴 때 공부보다는 일을 했던 이웃들의 분위기 속에서도 저는 학모를 쓰고 공부를 하러 다녔습니다. 공부를 시키지 않고 일을 시키는 일이 흔했던 만큼 학모를 쓰고 학교로 가는 길이면 뿌듯함에 어깨가 으쓱할 정도였죠. 이런 상황에서 공부하기 싫다는 말은 감히 꺼낼 수도 없었습니다. 지금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서예도 부모님께 배웠습니다. 고등학교 2~3학년 즈음에는 어깨너머로 배운 붓글씨가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춰 주변 사람들에게 혼례식 축사를 써주기도 했습니다.”

90년대 초 손 훈장은 지인의 권유로 서예학원에 등록하고 본격적으로 붓글씨를 배웠다. 그 전까지는 어느 한 곳에서도 서예를 배운 적이 없지만, 서예학원에 등록을 하자마자 ‘어디서 붓글씨를 배웠느냐’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실력이 갖춰져 있었다. 학원에 등록하고 일주일 만에 전시회에 참가했고, 2001년에는 서예대상까지 받았다. 훗날 사업을 하는 와중에도 사무실 한 구석에 서예도구를 마련해 두고 틈만 나면 붓글씨를 써 먹물이 마를 새가 없었다.

지금도 손 훈장은 대학 수업을 들으며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영진전문대 사회복지과 학생으로 열심히 공부에 매진했다. 사회봉사에 뜻을 두고 있지만 제대로 사회복지를 배운 적이 없었기에 사회복지과를 택했다.

각 대학에서 운영하는 평생교육원에도 좋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모두 찾아갔다. 이곳에서 서예와 사회복지학은 물론 자연치유학도 공부해 배움을 남들과 나누고 있다. 건강과 사회복지학을 두루 섭렵한 덕에 지역민들에게 강의를 하면서도 막힘 없이 지식을 전할 수 있게 됐다. 요즘 그는 책을 쓰기 위한 공부에 집중하고 있다. 회고록을 남기고 현대혼례에 관한 것을 집대성하기 위한 공부다.

“한 해도 공부를 쉬지 않았습니다. 어떤 것이든 한 번 익히면 어딘가에는 써먹을 데가 있습니다. 자연치유학도 ‘돈 안 드는 건강관리법’을 지역민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데 큰 도움이 됐죠. 배운 것은 결코 혼자만 알고 있지 않습니다. 책을 쓰기 위한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책을 쓰는 것이 남들과 지식을 나누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죠. 아이들의 인성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어른들의 인성교육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과 나누기 위한 지식도 열심히 쌓아나가고 있습니다.”

손 훈장의 호인 ‘요은(堯垠)’은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종신행복’이다. 한 평생 행복하게 살자는 기원을 담았다. 손 훈장은 한 평생 행복하게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이 남들과 나누는 것이라고 말한다. 도덕을 배우고 건강하게 사는 법을 나누면서,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살아가는 삶. 그것이 손 훈장의 목표이기에 호를 요은으로 삼았고, 서당의 이름도 요은이라 정했다.

“저는 밥 세 끼만 먹으면 됩니다. 세 끼가 여의치 않는다면 두 끼만 먹으면 되죠. 여러 활동으로 모이는 돈은 따로 통장에 모아뒀다가 다시 사회로 돌려줍니다. 지역과 사회의 문화가 풍성해지는 데 기여하는 것이 큰 보람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바로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하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면 다 해결되는 줄로 알지만, 결코 아닙니다. 어른들의 생활부터 올바르게 변화하는 것, 그게 먼저입니다.”

김정석기자 kjs@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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