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의 안내인 역할
시각장애인의 안내인 역할
  • 승인 2014.05.25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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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열 객원大記者
전북대 초빙교수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착하게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것을 성선설이라고 하고 악하게 태어났다고 하는 것은 성악설이라고 한다지만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경우를 보면 성선설이 맞는 것도 같고 저런 경우를 보면 성악설이 틀림없어 보이기도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살이다. 깊이 사색하고 사유하는 철학자들의 심오한 연구에도 불구하고 단정적으로 한쪽을 편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인성(人性)이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인간은 악한 사람보다는 착한 사람이 많다.

온갖 흉악한 범죄자들이 득시글거리지만 이들을 선도하고 희망으로 이끄는 봉사자들은 더 많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봉사다운 봉사를 해본 기억이 별로 없다. 어쩌다가 잠시 봉사를 했는지 몰라도 솔직히 말해서 자진하여 능동적으로 또 계획적으로 봉사에 임해본 일이 없다. 봉사는 스스로 마음이 내켜야 하는 일인데 나에게는 그런 DNA가 없는 것 같고 별다른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나랑 학교 동창인 진양덕(晋洋德)은 어려서부터 좀 남다르게 착실했다. 말도 자근자근 조심스럽게 하고 행동도 자중하는 편이었으며 맡은 일은 책임을 다하는 성실성을 보였다. 친구들도 너나할 것 없이 진양덕이라고 하면 믿을만하다고 인정했다. 큰 회사에서 주요 직책을 역임하며 정년을 맞이하더니 나중에 감사를 맡아 연장근무까지 했다. 치매를 앓으시던 어머니를 부부가 지극정성으로 모신 효성은 한참 전의 얘기다.

그가 은퇴를 한 후 맨 처음 시작한 일이 자기 동네 독거노인이나 장애노인을 찾아 목욕봉사를 하는 일이었다. 구청에서 지정하는 안내에 따라 1주일에 세 번씩 목욕봉사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힘들지 않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봉사의 개념이 어두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우문(愚問)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데도 한참 시간이 흘러야 했던 나의 아둔함이 지금도 쓴웃음을 짓게 한다.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장애노인을 정성스럽게 목욕시키는 일이 힘이 들고 안 들고의 문제이겠는가.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생판 모르는 사람의 몸을 씻어줄 수 있겠는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발을 씻겨주는 정경을 TV로 보면서 저 분의 행동이 쇼를 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고 느꼈던 일이 생각난다. 이런 봉사에 뒤이은 친구 하나가 더 있다. 원용인(元容仁)이다. 유수한 석유회사의 호남본부장까지 하면서 술 좋아하고 놀기 잘하는 친구였다. 학생시절에는 웅변으로 이름을 떨치기도 하면서 봉사활동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는데 은퇴 이후 스스로 동네 복지관에 찾아가 장애인의 손발 역할하기를 자원했다.

그는 정기적으로 정신지체가 있는 청소년 한 사람을 담당하여 함께 걸어주는 역할을 맡았다. 팔다리가 불편한 사람은 붙잡아 주기만 해도 되겠지만 정신 지체자는 다루기도 좀 어렵지 않은가 생각되었다. 나는 또 멋없는 질문을 던져봤다. “말은 알아듣고 하라는 대로 따라 하기는 하냐.” 그의 대답에 나는 또 한 번 얻어맞았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내가 오히려 걔가 하자는 대로 따라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사람과 사람은 서로 얽혀 살며 돕고 도움을 받는 것 같다.

진양덕이나 원용인이도 이제는 70대 중반을 넘어서서 봉사활동은 거뒀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한결같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나에게 참으로 우연히 시각장애인 안내인 역할을 할 기회가 찾아왔다. 얼마 전 서울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전철 추돌사고로 수백 명이 부상을 당한 날 아침녘이다. 노원역에서 4호선을 타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서 천천히 내렸다. 바쁜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플랫폼에 시각장애인 지팡이를 든 청년 한 사람이 서있었다. 나는 그를 스치고 지나가려고 하는데 돌연 그가 나를 불러 세웠다. “종로3가를 가야하는데 어디로 갑니까.” 그는 키도 크고 덩치도 컸다. 순간적으로 멈칫했지만 “나도 그쪽 방향으로 가는 길이니 나를 따라오시오” 하면서 내 몸을 그에게 붙였다. 내가 그의 팔을 붙잡아주지 않고 그가 내 팔을 붙잡게 했다. 그는 성큼성큼 잘 따라왔다. 에스컬레이터 앞에서는 올라간다고 안내했고 계단을 내려갈 때에도 내려간다고 말해줬다.

시각장애인을 인도하는 인도견(引導犬)은 말은 못해도 조심스러운 행동으로 안내하는데 말이 통하는 사람이기에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불과 5분 정도의 시간에 불과했지만 시각장인을 안내하는 나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을까. 형제간이나 부자간으로 봤을 수도 있다.

바로 그것이다. 장애인이나 약자를 돕는다는 것이 형제나 부자처럼 친인척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나에게 참으로 우연히 주어졌던 시각장애인 안내인 역할은 또 언제 찾아올지 모르지만 스스로 찾아 나설 수 있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세월호 참사에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고생을 하고 있으며 잠수요원 한 명이 목숨을 잃어 천안함 사건 때의 한준호 재판(再版)이 되었지만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일은 새로운 빛으로 되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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