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하기엔 너무 위험한 항아리
가까이 하기엔 너무 위험한 항아리
  • 승인 2014.05.2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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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규성 논설위원
옛날 어느 집에서 질항아리와 쇠항아리가 살았다. 서로 부딪치지 않으며 그런대로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쇠항아리가 질항아리에게 같이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흙으로 만들어진 질항아리는 자신의 취약함을 잘 알고 있었고, 오히려 난롯가를 지키고 있는 편이 더 편안하고 현명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양했다. 그러나 쇠항아리는 집요했다. 질항아리가 약하기 때문에 조금만 충격을 주어도 부서져버릴 것을 잘 알고 있던 쇠항아리는 질항아리에게 말했다. “나는 쇠로 만들어져 아주 튼튼해요. 만약 여행 도중에 단단한 것이 당신을 위협한다면, 내가 당신을 보호해주겠어요.” 질항아리는 쇠항아리의 끈질긴 유혹에 그만 넘어가고 말았다. 그들은 길을 떠났다. 처음부터 쇠항아리는 질항아리 바로 옆에 붙어서 걸었다. 질항아리는 처음부터 조심스러웠다. 조그만 소음만 나도 쇠항아리 옆으로 붙어 섰다. 그러나 쇠항아리 자체도 문제였다. 쇠항아리는 질항아리가 피하고자한 단단한 물체 그 자체였다. 얼마 후 동네를 가로질러 달려가던 개를 피하다가 질항아리는 그만 쇠항아리와 부딪치고 말았다. 한마디 불평도 할 새도 없이, 질항아리는 길 한가운데에서 산산조각 부서져 버렸다.

누가 질항아리고 누가 쇠항아리인지 모르겠지만, 최근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리미아 반도와 동부 우크라이나 문제로 러시아에 제재 조치를 취한 일본에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일본 정부는 지난 4월 29일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 정부 관계자 23명의 일본 입국비자 발급중단의 제재조치를 내렸다. 일본은 역사왜곡, 과거사 갈등에서 공격적 영토분쟁까지 겪고 있는 한국과 중국뿐만 아니라 그간 조심스럽게 쿠릴 열도 4개 섬(북방영토)에 대한 협상을 벌여 온 러시아와도 사이가 틀어지는 양상이다.

아베 총리는 2012년 12월 취임 이후 푸틴 대통령과 5차례나 정상회담을 했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작년 4월에는 최대 2000억 엔(약 2조2000억 원) 규모의 투자기금 창설 합의를 통해 관계를 돈독히 해왔다. 그러나 최근 ‘폭력과 탐욕’으로 시작한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하고 만든 평화헌법의 해석변경을 통해 침략의 역사를 반성하지 않고 집단자위권을 구축하려는 일본이 동북아에서 점점 더 고립되고 있다.

한편 일본과의 사이에서 금이 가기 시작한 러시아는 중국과 부쩍 가까워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동병상련일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크리미아 반도를 합병한 뒤 미국 등 서방의 경제 제재를 받고 있고, 중국은 점차 본격화하고 있는 미국의 대중국 봉쇄와 일본의 영토적 도발에 맞서기 위해 서로 손을 잡을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지난 20∼26일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가 있는 동중국해에서 사상 최대 연합 군사훈련을 벌였다. 10년 넘게 끌어온 중-러 천연가스 협상도 최근 410조원 규모의 30년 계약을 타결했다. 일본 언론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군사훈련을 참관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내보여주는 이유는 부러움일까 질투일까, 아니면 두려움일까?

주변 국가들이 외면하는 외톨이가 되어가고 있는 아베 정권은 탈출구를 마련하기 위해 같은(?) 왕따 국가인 북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일본은 북한과의 수교교섭 재개에 ‘잰걸음’을 보여주며, 북한에 유혹의 미소를 보내고 있다. 일본은 이번 달 26∼28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북한과 두 번째 외무성 국장 회담을 연다. 납북 피해자의 안부 재조사 문제와 대북 제재 해제, 경제협력 및 지원 등이 맞물려 있지만, 이 두 항아리도 마주치면 금이 갈 것이다.

일본은 과거사 문제를 포함해 많은 갈등을 빚고 있는 한국에 대해서도 비교적 전향적 자세를 보이려고 애쓰고 있다. 아베 내각은 15가지 집단적 자위권 행사 사례집에 “해외에서 일본인의 생명이 위협받았을 때, ‘영역국의 동의’에 기반해 일본인을 구출한다”는 내용을 넣었다고 아사히신문이 5월 24일 보도했다. 그러나 앞서 아베 총리의 자문기구인 안보법제간담회는 5월 15일 보고서에서 ‘재외 일본인 보호와 구출을 위한 자위권 발동과 관련해 예외적으로 영역국 동의를 받지 않을 수도 있다’는 내용을 포함시켜 논란을 일으킨 바 있었다.

잊어버리면 부서진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3월 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한국말로 “만나서 반갑스무니다”라고 인사했다.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이번 정상회담이 미래 지향적인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불과 열흘 뒤 독도 영유권 주장을 대폭 강화한 초등학교 교과서 8종을 검정에 통과시켜 뒤통수를 쳤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위험한 항아리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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