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꽃밭을 지날 제면 죄 지은 듯하여라
이따금 꽃밭을 지날 제면 죄 지은 듯하여라
  • 승인 2014.06.0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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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전 대구중리
초등학교장
강창교에서 내려다보이는 대실의 금호강변은 지금 꽃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붉은 색깔의 덩굴장미가 피어서 일렬로 서서 열병을 하듯 줄지어 서 있다. 붉은 덩굴장미 사이로 꽃대는 가늘고 길며 그 끝에 두상화의 금계국이 노란 혹은 황색으로 피어 있다.

특히 금계국은 꽃대 끝에 많은 꽃이 뭉쳐 붙어서 머리 모양을 이룬 것이 멀리서 보기엔 더욱 아름답고 예쁘다. 두상화의 특징이 일렬 방사상으로 배열되어 중심부의 색깔은 황색이기 때문에 금계국이 보기에 좋은지도 모른다.

또 바닥에는 지천으로 등갈퀴덩굴이 길이가 5~6mm 정도로 보라색의 양탄자를 깐 듯 피어 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면, 잎겨드랑이에서 자라난 꽃대에 많은 꽃이 조 이삭 모양으로 붙어서 피는데 꽃의 생김새는 나비 모양이어서 더욱 보기에 운치를 더해 준다.

그 양탄자 모양의 등갈퀴덩굴 사이사이로 흰색 또는 연분홍색의 꽃이 산방상으로 달린 개망초가 수를 놓는다. 개망초는 꽃가지가 아래에서 위로 차례대로 달렸지만 아래의 꽃가지 길이가 길며 아래쪽에서 평평하고 가지런하게 핀다. 이런 모양을 산방상이라고 한다는데 우리나라의 전국 각지의 길가나 빈터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폐가가 되거나 밭과 논이 경작되지 않는 곳에 많이 자라기 때문에 개망초라고 한단다. 망초(亡草)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3, 4월에 일찍 꽃이 피었던 매실나무에는 매실이 주렁주렁 달려 있어서 길을 걷는 사람의 시선을 끌게도 한다. 제방 둑에는 산수유나무가 또한 열매를 맺어서 달려 있다. 곧 모감주나무의 노란 꽃이 아름답게 피면 이제 금호강변은 환상적인 꽃의 동산으로 바뀌리라.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삼천리금수강산이라 했다. 금수강산(錦繡江山)은 ‘비단에 수를 놓은 아름다운 산천’이라는 뜻으로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일컫던 말이다. 그런데 어휘력이 부족한 젊은 세대들은 ‘금물과 같은 강과 산’이라며 금수강산(金水江山)으로 어휘를 해석하기도 한다.

금수강산에 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해야 하고 행복해야 한다.

김기림 시인은 독신자인 플로베르의 행복은 그의 일 속에 있었다고 하며, 유치환 시인은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행복하다면서 사랑하였으므로 진정 난 행복하였네라 하였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벨기에의 마테롤 링크는 ‘파랑새’에서 행복은 지금 당장 이 자리에 있으며 마음속에 있다고 하였다.

두 돌 지난 손자 손을 잡고 방죽에 데려갔다./할머니가 매실나무 꽃을 보고 향기를 맡는다./그러다 꽃이 피지 않은 나무 한 그루를 발견하고/나무가 가엾은 생각이 들어/“꽃이 안 피었구나! 세상에!”하고 소리친다./손자 녀석/할머니를 빤히 쳐다보다가 그 소리를 받아/“꽃이 안 피었구나! 세상에!”하고 소리친다./그리곤 30여분 동안 그 나무를 쳐다보며/“꽃이 안 피었구나! 세상에!”하면서 할머니의 손뼉 치는 흉내까지 낸다./세월호로 많은 학생들이 실종하고 사망했다./꿀컥 침을 삼켜본다./눈시울이 뜨거워진다./“꽃이 안 피었구나! 세상에!”하고 되뇌어 본다./말이 살며시 입 밖으로 나온다./“꽃이 안 피었구나! 세상에!”/눈물이 자꾸 쏟아진다.//(꽃이 안 피었구나! 세상에! -아! 세월호 침몰-, 필자)

고려의 학자 우탁은 ‘늙지 말려이고 다시 젊어 보렸더니/청춘이 날 속이고 백발이 거의로다./이따금 꽃밭을 지날 제면 죄 지은 듯하여라.’라는 시조를 지었다. 이 시조의 종장을 읊조리고 있자니 끔찍한 세월호의 침몰로 인한 가슴에 드리운 불안과 우울함이 가끔씩 떠오른다.

아름다운 산하의 꽃밭을 지날 때면, 진정한 사표(師表)인 단원고의 고 강민규 교감의 유서 내용이 자꾸만 뇌리에서 상기된다.

‘200명의 생사를 알 수 없는데 혼자 살기에는 힘에 벅차다. …. 내 몸뚱이를 불살라 침몰 지역에 뿌려 달라.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을 할까.’

주자(朱子)는 ‘이와 같이 해서 병이 됨을 안다면,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약이 될 것이다. 만약 다시 어떻게 하여 이와 같이 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나귀를 타고 나서 다시 나귀를 찾는 격으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바탕 늘어놓는 데 지나지 않을 것이다.’하였다.

이제 병이 됨을 알았으니, 다시는 같은 일을 되풀이 하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하리라.

이제 꽃밭에 가서 꽃밭을 찾지 않는다는 생각은 쓸데없는 이야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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