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을 가진 자들의 망각
특권을 가진 자들의 망각
  • 승인 2014.06.1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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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민 철학본색 대표
1. 아우슈비츠에 수감되어 있었던 포로들 중에서도 특권을 가진 자들이 있었다. 프로텍치아라고 불리기도 했던 이들은 ‘최종처분’을 조금이라도 유예하기 위해, 즉 목숨을 조금이라도 더 부지하기 위해 아우슈비츠의 하위 계급 관리자가 되길 자처했다고 한다. 존더코만도스(Sonderkommandos)도 수용소의 포로들 중에서 특권을 가진 특수 부대였다. 이들의 임무는 주로 수용소의 가스실과 화장터 관리, 시체 처리를 담당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들이 다른 포로들에 비해 훨씬 더 나은 생활을 했던 것은 아니다. 프리모 레비에 따르면 단지 0.5리터의 죽을 더 얻고자 특권 아닌 특권을 가진 프로텍치아가 되고자 했던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정도의 특권이라도 누릴 수 있는 프로텍치아가 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프로텍치아가 되기 위해서는 권력과의 교감이 필요했다. 그 권력은 다름 아닌 자신들을 포로로 만든 자들, ‘나치’였다.

2. 수용소 안에서 프로텍치아들에게 더 많은 권한이 주어진 이유는 오직 수용소 간수들의 편의를 위해서였다. 간수들은 결코 프로텍치아들이 특권만을 누리기 위해 권한을 가질 수 없도록 철저하게 관리했다.

만일 우리 사회에도 프로텍치아가 있다면 그것은 공공의 편의를 위해 특권을 부여 받은 자들, 요컨대 법조인, 정치인, 성직자 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용소의 프로텍치아들이 자신들에게 특권이 부여된 이유를 망각하지 않는 것과는 반대로 우리 사회의 프로텍치아들은 자신들에게 특권이 부여된 이유를 너무나 쉽게 망각한다. 오늘 날 법조인들은 더 이상 정의실현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지 않는다. 정치인들 역시 공공의 복리 증진을 자신의 임무로 여기지 않는다. 성직자들 역시 신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자신의 직분으로 삼지 않는다.

3. 법조인이 정의에 종사하지 않는 이유, 정치인이 공공에 봉사하지 않는 이유, 성직자가 신과 이웃에게 헌신하지 않는 이유는 법, 정치, 성직이 ‘정의’, ‘공공’, ‘신’을 명분으로 삼아 권력과의 교감 속에서 특권만을 누리려는 욕망에 쉽게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특권이 주어진 이유는 망각한 채 그 특권은 그대로 유지하고자 권력의 비호를 받기 위해 권력과 교감하게 된다. 특권을 가진 자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자신의 특권이 ‘권력이 아니라 시민으로부터’ 부여 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

4. 수용소의 프로텍치아가 동료 포로들의 ‘눈빛’이 아니라 간수들의 ‘감시’를 두려워했다는 점은 수용소가 누구의 것이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이 사회의 특권을 가진 자들이 시민이 아닌 권력을 두려워 한다면 이 사회의 주권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역시 명확하게 드러난다.

지방선거에서 한 표를 호소하는 시장 후보부터 구의원 후보까지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있는 사회, 국무총리 후보였던 자가 전관예우라는 불합리한 특권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할 수 있는 법정, 아버지 목사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아들 목사에게 담임하던 교회를 아무렇지도 않게 세습하는 것을 허용하는 교회라면 이 사회의 주인이 국민이고, 법의 본질이 정의이며, 교회의 머리가 신이라는 당연한 명제조차도 순진하고 나약해 빠진 이야기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5. 특권이라는 이 ‘예외적 입지’. 이 특권이 특권을 가진 자 그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것으로 작동하는지, 모두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작동하는지에 따라서 우리는 그 조직과 사회의 주권을 말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수용소에서부터 어느 사회나 특권층의 존재는 불가피하다. 다만 그 특권이 단지 특권이 아니라 특권이 부여된 이유, 즉 책임과 의무를 동반한 것이 되도록 끝없이 감시하고 경계해야 한다. 법조인 자신 법 밖에 있지 않고 법의 지배 하에 있으며, 정치인 자신 시민의 한 사람이며, 성직자 자신 신 앞의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은 프로텍치아 그 자신 그저 포로 중 하나라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망각한 것이나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존더코만도스로 선발된 포로는 전임 존더코만도스의 시체를 불태우는 것으로 부대 입회 절차를 마쳤다. 즉,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만일 예외가 불가피하다면 그 예외는 나치, 존더코만도스가 아니라 포로, 정의, 시민, 신이어야만 한다.

6. 특권층의 망각, 오만, 비겁을 깨워야 한다. 특권을 가진 직책은 자처하게 할 것이 아니라 부담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망각하고 남용하는 비겁하고 오만한 자는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프로텍치아들은 자신이 포로 중에 하나라는 사실을 잊을지언정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이 누구로부터 온 것인지만큼은 망각하지 않는다. 법조인, 정치인, 성직자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그 자신이 누리는 특권이 진정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망각했다면 그 죄는 결코 가볍지 않다.

관피아, 군피아, 원자력 마피아들을 철저히 조사해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0.5리터의 죽만으로도 인간은 인간이기를 포기할 수도 있고, 같은 포로들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이 수용소에서 확인되었다. 우리, 시민이 특권을 부여한 자들이, 특권을 가진 자들이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도록, 자신들이 누구를 위한 존재인지를 알도록 감시하고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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