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메시지
암울한 메시지
  • 승인 2014.06.2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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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규성 논설위원
미국의 정치학자 F.후쿠야마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자본주의를 끝으로 ‘인간의 역사는 끝났다’고 말했다. 인간은 이제 이들 체제보다 더 나은 체제를 만들 수 없다는 말이고, 다른 말로 이들 체제들이 인간이 만들고 발전시킬 수 있는 최고의 체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의 한계와 시장자본주의의 문제는 끊임없이 인간을 괴롭히고 있고, 암울한 메시지를 던진다.

프랑스의 한 젊은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자신의 책, ‘21세기 자본론’에서 이 시대의 문제와 도전에 대한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는 지난 300년간 세계의 부의 축적과 소득의 분배에 관한 경험적 연구를 통해 이 지구상에는 엄청난 불평등이 지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메시지는 한마디로 암울하다. 그에 따르면, ‘원시경제에서는 빈부격차가 없고, 경제발전이 이뤄지면서 불평등이 극에 달하고, 선진 경제로 진입하면서 점차 문제가 해소된다’는 주장은 틀렸다는 것이다. 오히려 경제개발기에 빈부격차가 가장 적고, 선진경제로 진입할수록 그 격차가 확대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인가 아니면 역설인가?

토마 피케티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소득불평등의 심화는 거의 불가항력적이라고 한다. 자본이익율이 경제성장의 속도보다 빠를 때 소득 대비 자본의 비율이 증가하며, 전체 소득에서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따라서 불평등은 더욱 심화된다. 즉, 주식과 부동산을 소유한 자본가들의 수익률이 항상 경제성장률을 초과해왔기 때문에 월급생활자와의 격차는 점점 벌어질 수밖에 없다. 다른 말로,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노동이 돈을 버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이다. 지금도 주요 선진국의 경제 성장률은 연 1~1.5%이지만 자본 이익률은 4~5%나 된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고, 따라서 소득 불평등은 갈수록 심해질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자유무역과 고도성장을 기반으로 하는 소위 ‘자본주의의 황금시대’에 나타난 평등화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였고, 1980년대 이후 소위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서구국가들과 그 뒤를 쫓아가는 한국을 포함하는 신흥국들에서 진행되는 엄청난 불평등은 최상위 1%, 특히 초상위 0.1%에 부가 집중된 결과였다. 이런 자연스럽지 못하고 피할 수 있었던(?) 1:99 사회의 현상은 부의 세습에 의해 부자가 사회를 지배하고, 가난한 자는 대를 이어 가난해지는 ‘금권정치’와 ‘세습자본주의’로 발전할 것이다. 금권정치는 당연하게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중 하나인 평등을 본질적으로 파괴하고, 세습자본주의는 기회의 평등과 더불어 ‘인간다운 삶을 살’ 복지를 근본적으로 위협한다.

누가 잘 살 가능성이 거의 없거나 줄어드는 데 열심히 일할 것인가? 누가 열심히 일해 봤자, 놀고먹는 사람들이 버는 돈보다 더 적게 버는 데 열심히 일할 것인가?

그래서 옛날부터 희망이 적었던 시절에 흔히 “돈이 많은 그러나 명이 짧은 과부” 이야기를 많이 했다. 우리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에서 범죄자이자 악당이었던 보트랭이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는 라스티냐크에게 세상사는 법을 한 수 가르쳤다. “아무리 성공해도 부잣집 딸과 결혼하는 것만 못하다.” 토마 피케티가 계산한 바에 의하면 이 조언은 19세기 유럽의 현실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현실을 매우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재산의 상속으로 상위 1%가 된 이들이 놀고먹으며 버는 소위 말하는 ‘돈이 돈을 버는’ 재산소득만 해도 상위 1% 임금의 2.5배가 되었다고 한다. 이런 게 바로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하는 사람보다 상속자들이 훨씬 많은 부와 특권을 누리는 세습자본주의의 본 모습이 아닐까?

미국에서는 현재 상위 1%의 전체 소득에서 재산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40%이고, 상위 0.1%의 경우 재산소득의 비중은 70%에 이른다. 옛날부터 그래왔겠지만, 근래에 들어 소득과 부의 불평등 문제가 더욱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앞으로 최상위 소득계층의 재산소득 비중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 그리고 사회적 기여와는 관계없이 상속에 의해 소수의 부자들이 특권을 누리는 악순환 세습자본주의는 기회균등과 능력주의 및 민주주의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진정한 재앙이다. 인간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나 보다. 그리고 경제민주화와 인간의 본질적인 ‘더 잘 살아 보겠다’는 희망이 시작되는 시점이 도래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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