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 없는 홍명보 · 정홍원 유임
명분 없는 홍명보 · 정홍원 유임
  • 승인 2014.07.02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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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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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창 명예주필
여민컴 대표
한국축구가 2014 브라질 FIFA월드컵에서 만신창이가 됐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의 자존심도 땅 밑으로 꺼졌다. 1무2패, H조 최하위의 성적. 목표였던 8강은커녕 1승조차 올리지 못했다. 1승도 기록하지 못한 것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 이후 16년 만이라고 한다. 최상의 조 편성에다 역대 최강의 전력이란 평가가 무색하다.

축구 경기는 승패를 가린다. 승리한 팀과 패배한 팀이 반드시 나올 수밖에 없다. 국민들은 단순히 한국대표팀의 패배를 질타하는 게 아니다. 질 때 지더라도 제대로 화끈하게 싸우는 경기력을 보였으면 박수와 갈채를 보냈을 것이다. 개최국 브라질과 16강전에서 맞붙은 칠레 선수들은 브라질 선수들보다 팀 전체 10km이상을 더 뛰었다고 한다. 축구선수 한 사람이 한 경기에서 평균 10km안팎을 뛴다고 보면, 칠레 선수들은 11명이 아니라 12명이 뛴 셈이다. 그래서 칠레 팀은 승부차기에서 지고도 ‘감동적인 패배’, ‘아름다운 탈락’이란 칭송을 받았다.

국민들의 대표팀에 대한 비난과 비판은 조별 예선 탈락 때문이 아니다. 칠레 선수들이 보여준 열정과 한국축구의 상징이었던 투지와 투혼이 실종됐기 때문이다. 축구전문가들은 한국 축구가 브라질 월드컵에서 실패한 원인으로 개인전술의 부족, 팀 전술의 부재, 빈약한 상대팀 정보와 전력분석, 체력 열세 등을 거론한다. 여기에 한국대표팀 홍명보 감독의 원칙을 저버린 선수 선발, 런던올림픽 동메달로 병역 혜택을 받은 선수들의 정신적 해이가 보태졌다.

한국축구의 레전드 차범근의 은사이자, 네덜란드 토털축구의 창시자 리누스 미셀 감독은 “우승은 어제 내린 눈일 뿐”이라고 했다. 우승한 날만 즐기고 곧바로 다음 대회를 준비하라는 말이다. 지난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승한 스페인 대표팀은 늘 하던 방식대로 이번 브라질 월드컵을 준비했다가 조별 예선도 통과하지 못하고 보따리를 쌌다. 홍명보 감독도 런던올림픽 동메달이란 ‘작은 성취’에 취해 올림픽 대표팀 출신 선수들을 대거 ‘의리 선발’해 참담한 실패를 가져왔다.

의리를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의리는 사적 관계에선 중요한 덕목일 수도 있으나 공적 영역에선 원칙을 파기하고 공정성을 해친다. 이 의리가 ‘해피아’, ‘모피아’, ‘법피아’ 등 우리 사회의 병폐인 각종 ‘관피아’를 낳았다. 조폭들도 맨 먼저 내세우는 게 의리다.

홍명보 감독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대한축구협회가 강권하는 바람에 원치 않는 ‘독배’를 들었다. 그래서 보리수염은 브라질 월드컵의 참담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다시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보았다. 한국사회가 ‘패자 부활전’을 좀체 허용하지 않기에 그가 이번 대회를 거치면서 얻은 경험과 노하우를 사장시켜선 곤란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축구협회와 홍명보 감독의 최근 태도를 보면서 그가 다시 대표팀을 맡아선 곤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홍 감독은 1년 전 대표팀을 맡으면서 ‘꾸준한 소속팀 활약’이란 선수선발 원칙을 천명했다. 예외 없는 원칙은 없다지만 홍 감독은 자신이 세운 원칙까지 저버리면서 박주영 등을 ‘의리 선발’하는 바람에 처참한 실패를 가져왔다. 그럼에도 그는 “반드시 실패만은 아니다”고 강변하면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그럼에도 축구협회는 일각의 ‘홍 감독 경질’ 주장에 대안이 없다며 홍 감독에게 유임을 권유할 예정인 모양이다.

결국 브라질 월드컵 대실패에 대해 홍 감독도 축구협회도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게다. 단순한 착오나 실수도 아니고 대실패의 책임자를 그대로 유임시킨다고? 어디서 들어본 소리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한 정홍원 국무총리를 유임시킨 박근혜 정부와 판박이다.

참패와 참사에 대해 책임을 지우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문책과 경질뿐이다. 유임은 문책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또 변화와 개혁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참패와 참사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통해 교훈을 얻고 이를 바탕으로 변화를 모색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따라서 축구협회와 박근혜 정부의 홍 감독과 정 총리 유임 결정은 참패와 참사에도 책임을 묻지 않는 나쁜 선례를 남길 뿐 아니라 미래조차 기약할 수 없게 한다.

축구협회와 박근혜 정부의 책임회피성 인사는 분명 국민을 경시하는 처사다. 축구협회는 ‘황태자’ 홍명보를 살리기 위해 한국 축구를 죽였고, 박근혜 정부는 정권의 안위를 위해 세월호 희생자를 비롯한 수많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저버렸다.

브라질 월드컵의 실패와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대한축구협회와 박근혜 정부는 평가와 반성에 이은 변화와 개혁은 제쳐둔 채, 책임회피에만 급급하다. 스페인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카를레스 푸욜은 “힘이 드는가? 하지만 오늘 걸으면 내일 뛰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축구협회와 박근혜 정부는 뛰어야 할 시점에 여전히 터벅터벅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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