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지 않고도 능히 할 수 있는 일
배우지 않고도 능히 할 수 있는 일
  • 승인 2014.07.15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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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전 중리초등
학교장
쓸데없이 많은 짐들이 다락방에 이리 저리 흩어져 있다. 정리를 하다가 오랜만에 40여 년 전 교단에 처음 섰을 때의 옛날 일기를 펼치니 산골 학교로 교체 시험 감독을 갔던 일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1971년 영덕군과 영양군의 경계지역에 위치한 학교, 하루에 한 두 차례만 버스가 이리구불 저리구불 비포장도로를 아슬아슬하게 산길을 달려서 가는 학교에 발령을 받은 동기 친구가 있었다. 아마 두메 중의 두메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곳에서 그 동기 친구는 본교가 아닌 자라목분교에서 1년을 보내고 본교에서 6학년 담임을 맡았다.

담임인 6학년 학급에서 반장으로 선출 된 아이는 또래 학반 아이들보다 두 살이나 많았단다. 그 아이는 모든 면에서 다른 아이보다 행동이 모범적이고 학업이 월등히 뛰어났다고 한다. 그 아이의 부모는 먹고 살기 위하여 더 멀리 산골 깊숙이 들어가 화전(火田)을 일구었고, 담배농사를 짓는 독가촌이었다고 한다.

혼자서 호젓한 산길을 타박타박 걸어서 산새 들새 소리 들으면서 학교에 다녀야 하고, 오가는 길가에 산딸기, 머루, 다래, 산포도를 따 먹으면서 지루하게 걸어서 학교에 다녀야 하는 처지였단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더라도 부모님이 한결같이 바래다주거나 마중 나갈 형편이 되지 못하는 까닭에 나이가 들어서 학교에 입학을 시킨 것이란다. 아마 그 아이가 학교에 늦게 입학하게 된 가장 적절한 사유이리라.

그런데 그 반장이 참으로 희한한 아이더란다. 담임이 조금이라도 교실을 비우는 경우는 담임보다도 반의 아이들을 더 잘 이끌어 나갔고, 자습이며 공부는 물론 생활지도까지도 알뜰히 하는데 기가 막힐 정도로 잘 하더라는 것이다.

평소에도 항상 담임 옆에서 일을 거들며, 곁에 붙어서 하는 일을 눈여겨보고 익히며 습득하여 담임의 역할까지도 곧잘 하더라는 것이다. 총명하고 명석힌 두뇌를 가진 그 반장 아이는 남에 대한 배려도 잘하여 어느 누구에게나 칭찬을 받고 신뢰를 받는 모범생이었단다.

시험 보는 날도 추운 날씨에 교실 난로엔 화목으로 불을 피워 뜨뜻하게 해 놓았고, 교사의 책상엔 아주 잘 익은 주먹 만한 홍시가 여러 개 접시에 놓여 있었다. 반장 아이가 챙겨 놓은 것이고 아이들은 질서정연하게 시험을 치루는 모습이 신기할 정도로 아주 정숙하였고 태도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 당시 진정으로 헌신적이고 봉사적인 학생이었던 기억으로 회상된다.

시경에 ‘천성으로 지닌 마음 두터운 우애(因心則友), 형과의 화목을 어찌 이르리오.(則友其兄)’라는 대목이 나온다. 인심(因心)의 의미는 ‘천성으로 지닌 마음’ 또는 ‘본연의 마음을 따르는 것.’이다. 성호 이익은 이 인심(因心)을 맹자가 ‘생각하지 않고도 아는 것을 양지(良知)라 하고, 사람이 배우지 않고도 능한 것은 양능(良能)’이라고 한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하였다. 예를 들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간에는 우애 있는 것 즉 효제(孝悌)가 바로 양지이고 양능에 속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성호 이익은 형제간의 우애는 꼭 그렇지만 않다고 하면서 배움과 익힘에 대하여 닭을 키우면서 경험한 바를 설명하였다.

알에서 깨어난 첫째 병아리는 항상 어미 닭 곁에서 모이도 가장 많이 먹고, 다른 병아리들이 접근할 겨를도 주지 않고 동생 병아리들을 쪼아대는가 하면, 어미 닭 품에서 제일 먼저 비를 피하거나 추위를 피하더라는 것이다.

평소에 그 병아리에 대하여 괘씸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저녁에 산 짐승이 닭장을 급습하여 어미 닭과 병아리를 잡아 갔다는 것이다. 다행이 세 마리의 병아리가 남았는데 첫 번째 깨어난 병아리는 부상을 당하고 동생 병아리 두 마리는 멀쩡하더란다.

며칠 후에 보니 부상당했던 첫 번째 병아리가 동생 병아리 두 마리를 겨드랑이에 안고 밤을 지새우는데 몸뚱이가 작아서 선채로 잠을 자고, 비가 오면 품에 안고, 날씨가 추워지면 따뜻한 양지로 종종거리며 동생 병아리들을 데리고 가더라는 것이다. 어미 닭이 있을 때, 익히고 체득한 것을 그대로 실천하는데 어미닭보다 더 챙기더란다. 사람이 바깥으로 쫓아내도 나가지 않고 가까이 접근하여도 도망가지 않더란다.

이것이 바로 천성이고 본연의 마음인 인심(因心)이라는 것이다. 사방을 둘러싼 둘레에 사람이 팔 벌리고 서 있는 인(因)의 글자를 보라.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 있는 것은 배우지 않고도 능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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