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나와 만났던
한 자루의 미제 M1 소총.
0008289의 사나이는
아침마다 꽂을대로
그 총구를 닦아내야만 했다.
지난날 태평양의 파도를 넘었던
어느 흑인병사의 손을 거쳐
6.25때,
한국의 나이어린 學兵과 함께
추풍령을 넘었던 한 자루의 소총.
한탄강 기슭에서 화랑담배를 피우던
옛 전우의 사연을 간직한 채
백마고지의 하늘을 울어 예던
뜨거운 포효는 무엇이었던가.
중부전선의 긴 겨울을 지키던
나는 2등 사수였다,
항상 무릎에 사구라꽃이 핀
엎드려뻗쳐에도 잘 견디어내던
이등병의 쓸쓸한 연인이 M1 소총
나는 스물네 살의 청춘이었다.
녹슨 총구를 닦아내는 아침마다
남쪽의 고향은 점점 멀어져갔고
그를 보듬고 지새는 달빛 아래서
밤마다 우리들은 잠 못 이루었지.
오늘 다시 입영하는 제자에게
그날의 총의 안부를 묻는다,
어느 흑인병사의 손을 거쳐
내 손에 쥐어졌던 소총,
오늘은 제자의 손에서 녹이 슬고
또다시 열 살짜리 아들의 손에서
무슨 뜨거운 꽃을 피울 것인가.
내 앞에 펼쳐져 있던 침묵의 산야,
조준경 위에 흔들리던
북위 38도선의 긴 겨울이여.
▷▶문병란 1935년 전남 화순産. 조선대학교 인문대 교수역임 1959~1963년 현대문학지에 <가로수> <밤의 호흡> <꽃밭>으로 김현승 시인의 추천을 받아 등단. 32권의 시집 간행 및 다수 산문집 간행 -요산문학상, 광주예술상, 금호예술상, 박인환시문학상등 다수 문학상 수상 -(현)지역문화교류재단 이사장, 서은문학연구소 운영, 서석풍아회 회장 서은문학회 회장. 시온고등학교 이사장.
<해설> 슬픈 현실이다. M1소총이 대를 이어 닦고 있음은, 아직까지 분단의 아픔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 학도병으로 소총을 닦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오로지 나라를 위한 그 숭고한 희생이 이제는 끝날 때도 되었건만, 아직도 대한민국은 겨울이다. -김인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