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버드나무 가지 꺾어 회초리 만들어 들고
초여름 한나절을 은어 떼 좇다가
지친 몸을 강둑에 누이고
버들피리 꺾어 불면
철교 위를 덜커덩거리며 지나가는
기차의 무쇠 소리에 놀라
푸드덕 날아올라 유영하던
흰 왜가리 떼 날개 짓 사이로
내 유년은 그렇게 서정적으로 흘러갔다
사업 실패하고 빚에 졸려
낙동강 변에서 자살로 짧은 인생을 끝내버린
외사촌 형의 유골을
말없이 강물에 흘려보내면서
어린 나이에 이미 고된 인생의 맨 얼굴을 봐야했던
비극적으로 슬프던
내 소년의 일부도 강물 속으로 날아갔지
비오는 어느 80년 대 초 4.19 날
겁 없이 안동공고 영어수업을 제끼고
댐 민속박물관 앞에 옮겨 놓은
육사시비 앞에서 혼자 눈물 흘리며
80년대 전두환 군사정권에
비분강개 두 주먹 불끈 쥐던
내 청춘은
독일 문호 괴테의 말처럼
고민하였으므로 한없이 방황하는
속절없이 아름다운 청춘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대한민국 安東은
내 평생 갖고 갈 정신의 뼈대를 세워준 곳
다시 태어나도 그곳에서
한 세월을 살고 싶은 곳
20대 이마 푸른 청춘이
권정생, 전우익, 이오덕과
맨발의 민족시인 임병호를 만난 곳
농민운동가 권종대 선생을 만난 곳
그곳에서 이육사를 노래하고
권정생의 ‘한티재’를 읽고
전우익의 ‘혼자서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를 배우고
이오덕의 ‘우리도 크면 농부되겠지’를 읊던
그 시절
아, 젊은 우리들 저항의 본산이던
가톨릭 목성동 성당이여
마구 쏟아지던 눈보라 속에서도
꼿꼿이 서 자태를 잃지 않던
농민의 분노여
선비의 정신이여
성당 초입 비탈 아래 오도카니 서 있던
사회과학 분도서점이여
안동문화회관이여
낙동강변의 가톨릭농민회관이여
끝내 안동 껀꺼이
이름 없는 민초들의
한 때 빛났던 聖地여!
(2012. 1. 3새벽)
▷▶김용락 경북 의성産.문학박사, 1984년 창비신작시집으로 등단, 매일신문 신춘문예 심사위원역임(1996~07) 세계시인대회(몽골) 한국대표시인 5인으로 참가. 한국작가회의 대구회장역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대구회장 역임. 2008 대구시협상, 2009 한시문협 올해의 시인상 시집 <푸른별> <기차소리를 듣고싶다> 외 다수 비평집 <민족문학논쟁사>외 다수
<해설> 누구에게나 생의 지렛대 같은 곳이 있다. 유년시절을 거쳐 청년기에 만난 역동의 세월 속에 그래도 문학이란 심지가 있어 살아갈 희망이 있었던 것이다. 너무 힘들었을 시기이지만 돌아서 그리움으로 회상할 수 있기에 오늘도 힘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영원한 성지인 안동이 있는 한. -김인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