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들역 가는 왼쪽 편에 복권만 파는
명당 복권집이 있다 1등 당첨이 13번이라고
자랑처럼 나붙은 깃발아래 사람들이
긴 줄을 잇고 있다 끈질긴 끈 같다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다 자본주의 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숲속에 들어가 산 스콧 니어링을
생각한다 그가 복권에 당첨되었을 때 그냥
얻어진 횡재니 양심에 찔린다며 복권을
휴지처럼 찢어버렸다고 한다 그 대목에 가서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복권 한 장
찢었을 뿐인데 복의 권리를 빼앗긴 것처럼 내가
왜 이렇게 찢어지는 것일까 만일 그 복권이
내 것이었다면 나는 아마 이 무슨 굴러온 복이냐며
좋아라 길길이 뛰었을 것이다 숲속에 들어가 산
니어링과 수락산 밑에 사는 내가 분명 다른
것은 그는 복권을 버렸지만 나는 자존심을
버렸다는 것이다
▷▶천양희 1942년 부산에 출생.
이회여대 국문과 졸업. 1965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마음의 수수밭’,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등 다수
<해설> 행복의 보편적 가치는 비움의 만족에 있다. 그렇다면 그 비움의 최상의 가치는 어디까지 일까?
가난한 사람이 다 행복하다고, 부자가 다 불행하다고 말 할 수 없는 것인데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린 그 욕심에서 행복의 가치관을 찾는 것, 즉 돈만이 행복이라는 그 생각이 문제라는 것이다. 자존심을 세우면 행복은 내 곁에 있는데….
-제왕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