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뜨거운 여름
그녀들의 뜨거운 여름
  • 승인 2014.08.03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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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혜
한국폴리텍대학 섬유패션캠퍼스 패션마케팅과 교수
7월의 대구는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전국에서 가장 뜨거운 기온을 갱신하는 더위로 유명하다. 대학의 특성상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섬유ㆍ패션을 공부하고자 모이는 우리 대학 학생들은 유독 이러한 대구의 더위를 못 이겨 여름방학 시작과 함께 저마다들 살던 고향 땅을 찾아 도망치듯 귀향(歸鄕)이란 걸 하게 된다. 나 역시 오랜 세월 내공을 쌓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젠 대구의 더위 앞에서는 한 풀 기가 죽어야 함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일상에서 영어 “F”와 “P”를 발음 할 때는 미묘한 차이만이 있기 때문에 구별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두개의 영어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Fashion”과 “Passion”은 나에게 늘 하나의 단어로 인식이 되고는 한다. 패션(Fashion)을 전공하는 학생들과 있다 보니 우리 학생들에게서는 다른 학생들과는 또 다른 열정(Passion)을 많이 느끼게 되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늘 학생들과 진정한 패션인은 가장 강한 열정을 가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지난 오월, 될까 안 될까를 무던히도 고민하며 많은 노력 끝에 개설된 우리 대학의 특별과정이 시작되었다. 경력단절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이제껏 다소 생소했던 특별과정이었다.

패션을 기본으로 하는 판매, 매장관리를 중심으로 샵매니징을 교육하는 것으로 요즘 새로이 생겨나는 다양한 소매업체들에서 일할 수 있는 실무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이 교육의 목적이다. 처음 모집할 때는 이력서를 작성 하듯 꼼꼼히 적어 내려간 자필 지원서와 자기소개서가 매우 인상적이신 분들도 있었고 육십이 넘은 나이에도 나의 성실함과 노력은 20대에 못지않다고 하시며 면접에 응하시던 모습들이 선한데 벌써 3개월의 모든 과정을 마치며 어느 누구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내셨던 스물두 분의 대단한 여성들이다.

많은 대학 내 교수님들과 외부 실무 강사 선생님들이 이 교육에 매달려 다소 힘들고 어려운 일들도 많았다. 하지만 수업시간 그녀들이 보내준 패션에 대한 열정은 이러한 모든 힘든 마음을 기꺼이 내려놓고 함께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몇십 년 전 아니 몇 년 전까지도 당당히 경제활동을 했던 그녀들이 가정으로 돌아와 육아, 출산에 전념하다 이제야 ‘나도 시작할 수 있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용기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젊은 대학생들과 함께했던 수업시간에는 막연한 사회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가진 20대들의 열정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의 수업시간은 은근과 끈기, 그야말로 내공이 느껴지는 진정한 삶에 대한 강한 열정이 느껴졌다.

요즘 많은 매스컴을 통해 이러한 경력단절여성들의 재취업에 대한 기사를 많이 접하게 된다. 고등교육을 받은 수많은 여성이 결혼, 출산, 육아 등의 이유로 가정생활에 전념하다 보니 다양한 사회적 참여를 통한 자신의 역량을 지속적으로 유지, 관리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이에 스스로 사회참여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하게 된 여성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과 연계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있다. 특히 경력단절여성 재취업을 위한 과정으로 가장 희망하는 것은 관련 분야교육, 자격증취득, 취업, 창업 등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가 처한 현실은 사회적 인식, 제반 육아지원시설, 좋은 일자리 확보 등이 부족하다. 때문에 그들이 자기 발전과 더불어 진정한 사회인으로 그 역할을 하기에는 여전히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처음 탄생하게 된 여성 대통령에 대한 단순한 예우를 위한 임시 정책이 아닌 진정 사회적 요구에 맞는 여성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때 이러한 교육의 진정한 목적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늘 아침 수료를 앞두고 내 방을 두드린 참한 애기 엄마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라는 마음이 컸지만 이제는 ‘나도 할 수 있어.’ 라고 말할 수 있는 강한 용기가 생겼다고 한다. 이렇듯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정규수업 후 강의실에 삼삼오오 마주 앉아 공부하던 그녀들의 열정은 이 더위도 무색하게 하는 또 다른 뜨거운 열정임이 틀림없었다.

이제 그녀들은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출발점에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밤새 몇 줄 되지 않는 본인들의 학력이며 경력을 너무나도 정성스럽게 손 글씨로 쓰며 할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한다는 그녀들의 간절한 눈빛, 예전 고등학교, 대학교를 함께 즐겼던 휴식시간의 달콤한 수다, 어느 아침 동료들과 나누겠다며 집에서 만든 빵이며 간식거리를 아침 식사 대용으로 싸오며 나눠 먹던 그런 여유까지도 이제는 귓가에 아른거리는 추억의 한 페이지를 만들게 되겠지만, 그녀들의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했던 이 여름은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 같다.

3개월 동안의 인연이 그녀들이 꿈꾸는 미래를 위한 또 다른 출발점이 될 수 있길 바라며 가장 낮은 곳에서의 강한 외침과도 같은 그녀들의 희망이 세상 모든 곳에 잔잔히 파고들기를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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