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통로에서 전시하는
육이오 피난민 사진전에
어린 아이가 길모퉁이에 앉아
울음을 참는 사진이 전시돼 있었다
저 아이가 살아남았다면 나이 칠십 쯤 됐겠지
어느 날 지하철 타려던 승객들 중에서
저 아이가 자신인 줄 알아본 노인이 있다면
날마다 찾아와서 가슴 먹먹해지겠지
그 시절을 오롯이 기억하고 있어서
어느 쪽에서 날아왔는지 모를 총알에 부모님이 쓰러지고
굶고 굶고 또 굶으며 떠돌다가 들어간 고아원에서
미국이 준 구호물자로 먹고 입으며 감사하고
북한이 부모님을 죽였다며 증오했을까
길모퉁이에 앉아 울음을 참았던 그때부터
손자손녀를 봐서 행복한 지금까지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겠지
그러하지 아니하고, 저 아이가 북한으로 가서
여태껏 그럭저럭 살거나 이미 굶어죽었을지도 모르겠지
그런 걸 알 리 없는 늙은 친구가 사진을 보곤
간절히 만날 날을 기다릴지도 모르겠지
승강장에 지하철이 도착할 때마다
승객들이 타고 내리고 떠나버려서
육이오 피난민 사진전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종오. 1954년 경북 의성 출생.
1975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
시집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남북주민보고서’ 등 다수
<해설> 우리 기억에 생생한 육이오 전쟁도, 저 승강장에 지하철이 도착할 때마다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마는 실상의, 아무도 보지 않는 피난민 사진전처럼.
사회 고발 詩다. 잊어서는 아니 되는 것인데, 그것마저 아스라이 상실해 가는 오늘날이 어찌 서글프지 않을까? -제왕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