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탄 빨간색 시외버스
악다구니로 퍼붓는 빗줄기 속 하굣길의
아이들 무명지 옷은 젖은 지 오래
버스바퀴가 퍼 던진 흙탕물 낡은 종이우산으로 가려 보지만
두어 시간 더 달려 그 곳에 닿았다
냇물이 넘치기 전 서둘러 출발하겠다며
운전사도 차장도 점심요기 하러 가 텅 빈 버스 창문
손바닥으로 문지르자 비로소 다가서던
산골국민학교, 그녀는 발령된 지 겨우 여섯 달 신참 선생님
스물두 살 하얀 손가락을 비집고 나와
작은 운동장에 나지막이 깔리던 풍금소리
그대로 되나왔다 바보같이
가을꽃 젖어 흐린 길 산모퉁이 돌아
돌아갈 울멍줄멍한 들판 지나 붉은 흙탕물
콸콸콸 가파른 개울을 힘겹게 건너는 차창에다
손가락으로 그녀의 산골 적막(寂寞)까지 썼다 지웠다
그것이 마지막 안부였을 줄
여름비 올 때마다 길을 나선다
먼 먼 길 숨 고르던 버스종점은 오간데 없고
폐교된 지 오래, 깊은 숨 들이켜야 보이던 산골초등학교
잡풀 가득한 운동장으로
스물두 살 그녀의 하얀 손가락을 비집고 나와
물보라로 깔리던 풍금소리를
잊을 수 없다
풍금소리, 까닭 없는 그 풍금소리를
▷▶김태수 1949년 경북 성주 출생.
1978년 시집 북소리로 등단.
시집 ‘베트남 내가 두고 온 나라’ ‘겨울 목포행’ 등 다수.
<해설> 첫사랑의 진솔함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3연의 마지막 행 ‘그녀의 산골 적막을 썼다 지웠다 그것이 마지막 안부였을 줄’ 뭉클하지 않는가.
그리움을 그렇게 풍금소리로 환치한 미적 아름다움에 아찔한 현기증을 느낀다. 아름다운 詩다. -제왕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