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시론>돌고 도는 세상살이: 파리매 이야기
<팔공시론>돌고 도는 세상살이: 파리매 이야기
  • 승인 2009.07.12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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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규성 (논설위원)

사자는 동물왕국의 제왕이다. 자연의 섭리는 먹이사슬을 통해 위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자연의 이치는 오묘하다. 그 이유는 생태계의 먹이 사슬이 제일 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일 위에서 제일 아래로 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사회에서도 먹이사슬은 아니지만, 인간관계의 사슬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일 것이다.

사자 왕이 어느 날 귀찮은 듯 자신의 주위를 맴도는 파리매에게 말했다. “꺼져, 이 버러지 같은 놈아, 하찮은 쓰레기 같은 것! 썩 꺼지지 못할까?” 파리매는 벌처럼 생긴 곤충으로, 발이 발달하여 딴 곤충류를 발로 움켜서 잡아먹고 산다.

물론 살아남기 위해 쓰레기 더미도 뒤지고, 다른 동물의 피도 빨아 먹는다. 새삼 들춰낼 것도 없지만, 몸집이 작고, 생김새도 볼품없다. 그래서 어지간해서는 무슨 말을 들어도 그러려니 하며 화를 잘 내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사자 왕이라고 하지만, 사자의 말투는 상대가 누구라 해도 도저히 삭혀 들을 만하지 못했다. 파리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파리매는 대담하게도 사자가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강력한 어조로, 사자에게 쏘아 붙였다.

“이봐, 사자! 네가 동물의 왕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기껏해야 숲속의 작은 동물들이, 그것도 살기 위해, 알랑거리는 말투로 떠받쳐주니까, 사자라면 누구나 무서워서 벌벌 기는 줄 아는 모양인데.....천만의 말씀이야! 내가 무서워서 떨 줄 알았냐? 미안하지만, 난 원래부터 심장이 작아, 상대가 누구든 더 이상 오므라들 것도 없다, 이 말씀이야.”

말하기가 무섭게 파리매는 갑자기 날개소리를 높여, 힘이 없고 작아서 동료애로 뭉쳐야만 살아남는, 그런 동료들을 불렀다. 그러자 그야말로 벌떼처럼 파리매들이 날아왔다. 사자의 몸을 시커멓게 덮어 버릴 정도의 파리매 대군이 등장하여 일제히 사자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동물의 제왕이 무슨 소용인가? 눈도, 코도, 귀도, 입도, 앞발 뒷발도, 목도, 꼬리도, 아랫배도, 사자 왕의 온 몸을 파리매와 그 동료들이 사정없이 찔러댔다.

조금 전 당당하던 사자 왕의 모습은 당장 여기저기 파리매에게 찔려 부어올랐고, 그 부어오른 피부를 겨냥하여 파리매 떼가 다시 끈질기게 공격을 계속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웬만한 동물은 한 번에 물어 죽이는 사자가 자랑하는 어금니도, 사자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갈기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너무 가렵고 아파서, 사자는 미친 듯이 자신의 날카로운 발톱으로 자기 몸을 긁어댔다. 이윽고 배가 찢어지고, 목이 찢어지고, 온 몸의 가죽이 찢어지면서 사자의 온 몸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러나 파리매의 공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파리매의 공격을 피하려고 온 몸을 흔들며, 날카로운 자신의 발톱으로 자신의 온 몸을 할퀴던 사자는 이윽고 체력을 소진하여 지치고 말았다. 파리매에 찔려 부어오른 피부가 또 공격을 받아, 피라는 피는 모두 대지를 붉게 물들이고.....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당당했던 동물의 제왕 사자는 온 몸이 피투성이, 상처투성이로 처참한 몰골이 되어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자연계의 먹이사슬이 위에서 아래로 연결되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이야기는 또 계속된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동료들과 함께 완벽하게 사자를 해치운 파리매는 동료들과 승리의 기쁨을 나눈 뒤, 자신을 위해 달려와 준 동료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헤어졌다.

그 날의 개가를 떠올리며, 혼자 승리감에 도취되어 집으로 기쁘게 돌아오다가, 아뿔싸! 그만 그곳을 지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던 거미의 거미줄에 걸리고 말았다. 이제는 다시 동료를 부를 날개 짓도 할 수 없다. 이렇게 해서 자연계의 먹이사슬은 한 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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