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무덤가에 있다
어찌 보면 여윈 팔뚝 같고
어찌 보면 미처 수습 못한
파묘 속 정강이 뼈 같은 나무의 가지는
궁벽한 몰골의 동질감을 내세워
아버지와 내통을 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오래 내통하다
한 계절을 빌려 몸짓으로 오는 나무 꽃은
나에게 한 번도 들킨 적 없는 아버지 울음 같아서
명치가 꽉 막히고, 불 꽃 같아서
심장이 데이고 급기야 곤죽이 되는데
그때가 되면
나도 그 붉은 배롱나무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아무에게도 들킨 적 없는 내 울음을
아래로, 아래로 흘러 보내
아버지에게로 간다
▷▶김은령. 경북 고령 출생. 1998년 불교문예 등단. 시집으로 통조림, 차경 등이 있음.
<해설> 참 선선한 정감으로 다가온다. 죽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화자의 저 속 깊고 애달픈 그리움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게다가 패목인 배롱나무조차 함께한 시간만큼 정이 깊어져 아버지 울음으로 환치되어 살아나는 전경으로 비추어져서니 명치 막히고 가슴 데이고 급기야는 곤죽이 되지 않을 수 없었겠다. -제왕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