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매, 징그러운 것
오매, 징그러운 것
  • 승인 2014.08.25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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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청 시인
바닷가 저 후박나무, 한번도 저곳을 벗어난 적이 없다. 천 년 전부터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찾아오는 손님도 없이 한 하늘을 이고 한곳만 바라보고 있다. 누구는 그가 저 원대한 바다를 바라보며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꿈을 품었다고는 하나 지금까지 여행 한번 하지 않고 천년을 저러고 있다. 그가 지금까지 바라본 건 바닷가 조그만 쌍둥이섬, 저 쌍둥이섬에 자식들을 천년만년 번식시키는, 천년동안 품어온 꿈은 그의 짙은 숨소리 속에 삭아 있고 군데군데 나이를 자랑하는 검은 흉터만이 그의 전설을 증언할 뿐 어느 누구도 그의 위용을 우러러보지 않는다. 심지어 그의 그늘을 이고 사는 자손들마저도 그가 이곳에 살고 있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오늘도 이곳에 찾아든 매미들만이 그를 위해 울어주면서 그의 역사를 쓰고 있다. 그가 견뎌낸 천년의 세월만큼 영악한 매미들만이 때가 되면 울고 때가 되면 그치기를 반복하였다. 공허한 바다를 향해 매미가 울 때마다 고목의 그늘은 바다를 향해 더욱 짙어가고 있다. 오매, 징그러운 것!


▷▶하재청. 1957년 경남 창녕 출생. 2004년 시와 사상 등단. 월간 웹시 ‘젊은 시인들’ 주간. 진주제일여고 교사


<해설> 왜 시의 제목이 ‘오매, 징그러운 것!’일까? 후박나무는 천년을 살아오면서 집밖을 나가본 적 없는 궁중궁궐 규수 같은데, 저 징그러운 것의 의미망에는 애교미가 묻어나는 것으로 보아, 그 나무는 후덕한 마음으로 자신의 모든 것 다 내어 주는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나무였기에 그런 제목을 붙인 것이 아닐까?
세상에는 짧지 않는 인생을 한곳에만 외골수로 투자하여 일가를 이루는 사람들을 더러 본다. 그들은 그렇게 빛나는 역사를 쓴다. 저 후박나무처럼 천년의 역사를 쓴다. -제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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