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피해자 보호·가해자 교정 함께 해야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가해자 교정 함께 해야
  • 승인 2014.09.0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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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희정 달서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경사
“아들이 나를 때리고 문을 안 열어줘서 3일째 집에 못 들어가고 있어요.”

지난 7월 얼굴에 심한 상처가 있고 행색이 초라한 박모(88) 할머니가 달서경찰서 월성파출소에 도움을 요청할 당시의 첫마디였다. 월성파출소에서 연락을 받고 현장에 출동해 아파트 주변을 배회하고 있던 할머니를 만나 ‘노인쉼터’로 모시고 가고자 하였으나, 할머니는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아들의 폭력으로 인해 철저하게 마음을 닫고 “경찰의 도움은 필요 없다. 아들만 잡아 감방에 처넣어 달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30대에 과부가 되어 홀로 외동아들을 어렵게 키워왔으나, 언제부터인가 아들은 술에 찌들어 어머니를 상습 폭행하는 ‘망나니’ 괴물로 변해버렸고, 평소에도 아들의 폭행을 피해 아파트 주변에서 노숙한 것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는 주변 사람들의 증언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할머니의 마음을 여는 일부터 시급했다. 매일같이 할머니를 찾아가 “경찰관이 아드님이 알콜중독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라며 수차례 설득했고, 노력 끝에 할머니는 마음을 열고 아들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동의해 주었다. 그 후 가해자인 아들(49)을 만나보니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알콜중독 상태였고, 이번 기회에 꼭 알콜중독 치료를 받아보자고 오랜 기간을 두고 설득해, 알콜중독 전문치료 병원에 약 6개월간 입원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연계했다. 가해자가 의료보험 2종 수급권자여서 병원비 일부를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병원 관계자의 말에 동사무소와 구청에 협조를 받아 1종으로 변경, 의료비 부담을 없애고, 추가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병원비도 병원에서 부담하도록 한 끝에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가정폭력 현장에서 상담을 진행하다보면, 피해자들은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보다 폭력적인 행동을 고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경우가 많다. 경찰관이 피해자에 대한 쉼터 연계 등 보호조치에 최선을 다해도, 가해자가 벌금형을 선고받게 되면 피해자에게 돈을 요구하거나 보복폭행을 가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가정폭력이 발생하면 피해자에 대한 보호 및 지원이 최우선 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다소 어렵더라도 가해자가 폭력행위를 하는 원인을 파악해 이에 대한 교정 및 치료가 함께 수반된다면 실질적인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 및 가정폭력 재발방지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번 사례는 가해자가 자발적으로 치료받도록 설득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피해자 할머니를 가정폭력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출발점이 된 것 같아 가정폭력전담경찰관으로서 보람도 느낄 수 있었다. 혼자 계실 할머니를 찾아가 안부를 묻고 집을 나서는 경찰관에게 “내가 줄 것이 이것 밖에 없다” 고 쌀이 담긴 조그마한 비닐봉지를 건네는 박 할머니의 따뜻한 모습에서 마음만 받겠다며 돌아선 발걸음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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