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통감한다
나는 통감한다
  • 승인 2014.09.1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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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락 수필가
흔해도

참으로 흔하다. 지천으로 늘려있는 풀이며 꽃, 나무 ….

대량으로 생산된 엇비슷한 물건들은 상점마다 쟁여있고 곳곳에 자동차, 건물 그리고 사람이 넘쳐난다. 맨날 보고 만나는 무수한 별, 돌멩이, 길, 산봉우리를 혹여 경시하지는 않았는지. 새삼 죄스럽다는 생각이다.

너무 쉽게 접하여 소홀했음인가, 흔한 것에 점차 무디어져 가는 게 안타깝다.

있을 것만 있어도 안 될 일이다. 풍족함이 없다면 세상살이가 얼마나 각박하며 무료할까.

모름지기 태어나 이름도 붙여지지 않는 것들은 천덕꾸러기로 여겨지기 마련인 것, 그래도 그렇지. 이 세상 소중하지 않은 게 어디 있으랴. 다 제 갈길 있고 제 복은 타고 난다고 했잖은가. 누구 하나 쳐다 봐 주지 않는 것도 서러운데 너무 흔해서 더 외로워질는지도 모른다. 다른 무엇보다도 사람과 사람과의 부닥침에 많이 지쳐있는 건 아닐까.

“아무리 많으면 무엇 하냐”며 내 것은 없다고 아우성들이다. 모래알처럼 많은 시간과 세월 또 그 많은 생명 중에 나는, 한 개체에 불과하다. 어떻게든 이 땅에 살아 남아야하리라. 나약하고 보잘 것 없을 것 같아도 강한 정신력이 보태지면 큰 원동력이 되는 걸 쉽게 보지 않았던가.

결코 흔하다고 해서 싱겁고 천하지 않은 법, 그중에서도 귀함을 얻으려 함이 인생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흔들리고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의 시처럼 우리 흔들리지 않고 어찌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쉼 없이 흔들려야만 존재하고 발전해 가는 것이리라. 달밤에 나뭇잎이 사각대고 산속 풍경소리에 마음 한구석 흔들리니 그 정취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지금 흔들거린다. 이쪽저쪽 어디로 갈 것인지를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다. 지나고 나면 그만이라지만, 결정하기까지 고통스러울 만치 교차한다. 몸과 마음이 같지 않기에 끊임없이 다투고 있다. 그래도 흔한 세상 흔들리지 않으면 죽은 거나 다름없을 것이니 참아내자.

머물러 있는 것 같아도 쉴 새 없이 스쳐 지난다. 그것이 바람일 수도 있고 사람들의 숨결과 꽃의 향기 아니면 썩고 살벌한 어떤 조짐일 수도 있다. 기꺼이 받아들이련다. 그 흔들림을 탓하거나 욕할 필요 없이 때론 이 길인지 저 길인지 몰라 애를 태울지라도 조급하지 말아야겠다. 언젠가는 제 갈 길로 갈 터이니 흔들리는 것만큼 그 뿌리도 탄탄하리라. 우리 외로워 말자.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

흔적 남기며

존재는 흔적과 씨족을 남겨 번성해 간다. 이왕에 내려앉았으면 뭐라도 하나 남겨야 하는 숙명을 걸머졌다. 그게 삶이요 보람인 것이다. 그러려면 이겨 내야하고 또 앞서야 하니 아픔도 따를 수 있다. 짐승들의 영역표시도 흔적의 산물인지라 어차피 약육강식의 세상은 피해갈 수 없을 듯하다.

고매한 흔적을 남기려하지만 그리 호락호락하지만도 않다. 존재를 알리기 위해 겨운 과정이 필요한데 통렬하지 않은 노력의 결과는 늘 시원찮았다. 그 누구도 간과하지 못한다. 그런 규칙이 존재하니 산다는 게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라는 공중화장실의 문구를 보고 흔적의 여파는 상상 이상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유명한 예술가, 종교가, 정치가의 흔적은 우리 인류사에 대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 그들로 인해 세상은 유유히 흘러가고 있음이다. 고관대작을 하였거나 비석 하나 세웠다고 잘 살았노라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봄바람에 눈꽃처럼 흩날리는 민들레 씨앗이며 모천으로 다시 돌아가 산란하는 연어 떼의 눈부신 흔적을 보고 우리는 감동하였다. 긍휼한 흔적하나 남기기 위해 고민 중인 나는 항용 북데기 같은 욕심만 가득 차있을 뿐이다.

욱수 계곡, 수초 하나가 세찬 물살에 맞서고 있다. 안쓰러워 살짝 떼어 놓으려고 해도 팽팽히 중심을 잡고 잘 방어하고 있다. 혼을 빼앗기는 악조건에서도 지키고 선 것이다. 곧 물이 얕아지면 평온을 되찾을 줄 알기라도 하는 걸까. 세상 관심 밖에 있는 저 풀도 제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하고 있건만, 난 요즘 작은 일에도 지레 포기하고 의욕을 꺾는 일이 퍽 잦다.

나는 통감한다. 흔한 가운데에서도 올곧은 흔적 하나 남기기 위해 필사적으로 흔들려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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