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시론>숙명 이야기 - 고양이와 여우
<팔공시론>숙명 이야기 - 고양이와 여우
  • 승인 2009.07.26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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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규성 (논설위원)

고양이와 여우가 나란히 순례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때까지 무수히 많은 사연이 있었다. 고양이는 좋은 일보다 말썽을 더 피워 마을 사람들을 괴롭혔고, 여우는 마을 사람들이 키우던 닭과 토끼를 훔쳐가서 마을사람들의 미움을 사고 있었다.

고양이와 여우의 순례여행은 다양한 이유를 생각하게 했다. 우선, 고양이와 여우 둘 다 평소에 나쁜 짓만 하고 다녔기 때문에, 반성하는 입장에서 그들의 몸과 마음을 정화하자고 생각했을 수 있다.

아니면 그런 가상한 생각은 접어두고 서로 미움을 받고 있는 동물들끼리 이쯤해서 휴양 겸 정보교환이라도 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아니면, 여행을 통해 넓은 세상을 구경하면서 새로운 작전을 구상하여 다음에는 둘이서 함께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악행을 저지르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마치 옛날부터 아주 친했던 것처럼, 고양이와 여우가 사이좋게 어깨를 나란히 하며 여행길에 올랐다. 여행도중 고양이와 여우가 함께 있는 것을 본 사람들의 증언은 보는 사람들의 생각과 희망과 사정에 따라 가지각색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양이와 여우가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눈 것은 확실했다.

사실 얼핏 보면, 고양이와 여우 모두 똑같이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 여우는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닭과 토끼를 훔쳐 먹지만, 고양이는 매일 주인이 주는 음식을 먹으며, 성가신 쥐도 잡지 않으며 재미삼아 장난질을 하고 있던 것이다. 더욱이 마을사람들에게 발각될 때도, 여우는 잡히면 그것으로 끝장이지만, 고양이는 그저 쫓기기만 할뿐 고작해야 돌팔매나 당하는 정도였다.

이런 식으로 서로 처지는 전혀 달랐지만, 노리는 대상이 비슷했기 때문에, 닭장이나 토끼장 같은 데서 서로를 발견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이 두 마리 짐승은 어느새 서로의 존재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여우는 여우대로 `목숨을 걸고’가 아니라 고양이처럼 `즐기면서’ 닭을 쫓아다녀 봤으면 했고, 고양이는 고양이대로 `목숨을 건’ 스릴과 스스로 먹이를 해결한다는 자부심을 맛보고 싶었다.

이런 차에 이 둘이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을 계기로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고양이가 여우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여우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불숙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여우님의 의연한 삶을 보고 있으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군요. 저 같은 건 인간에게 완전히 길들여져 이젠 틀린 것 같아요. 그래서 야생의 본능을 잊지 않으려고 사냥흉내도 내보지만, 결국 놀이에 불과합니다.”

여우가 대답한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고양이님! 저야말로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어 얼마나 영광인지 모릅니다. 사실 전부터 한번 말씀을 듣고 싶었어요. 하지만, 닥치는 대로 살아가는 신세라 제 쪽에서 먼저 말을 거는 것이 송구스러워서 지금까지 인사조차 못 했는데, 오늘은 좋은 기회이니 꼭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네요. 다름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매일 맛있는 것도 먹고, 멋대로 행동하며, 사랑을 받는 그런 마법 같은 인생이 가능한지.....?”

“아! 그거요. 그런 거라면, 좀 더 진작 말해주셨으면 언제라도 가르쳐 드렸을 텐데요. 간단합니다. 우선 당신처럼 진짜로 닭을 죽이면 안돼요. 적당히 쫓아다니면서 즐기다가, 인간이 화를 내면 그 때 얼른 달아나면 됩니다. 자칫 실수해서 죽여 버리면, 그 땐 다른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면 되지요.”

“그럼 배가 고프지 않습니까? 닭을 잡아먹지 않고 도대체 무엇을 먹습니까?” “당신은 너무 진지해서 탈이에요. 애초에 하루하루 먹을 것을 스스로 잡으려하니까 힘든 거지요. 배가 고프면 목을 가르랑가르랑 거리며 인간에게 다가가면 됩니다. 인간이란 이상한 동물이어서, 자기가 직접 밥을 먹이며 무언가를 키우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때로는 완전히 의존하는 척하며 다가가면 기분 좋아하지요. 그것도 평소에는 제멋대로 굴다가, 가끔 다가가는 것이 효과 만점입니다. 게다가 가끔씩 인간의 식량을 축 내는 쥐라도 몇 마리 잡아주면 정말 좋아해요. 쥐 한두 마리 정도야, 저 같은 동물도 놀이 겸 심심풀이니까, 여우님이라면 눈감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저는 여우님처럼 인간에게 아양 떨지 않고 살아가고 싶지만, 그래도 저같이 살고 싶으시다면, 그렇게 해보세요.”

“뭐야! 그런 거였어? 그 정도라면 매일매일 먹을 것을 어떻게 구할까 필사적으로 궁리하며 목숨을 부지하는 것보다 훨씬 낫잖아. 저런 하찮은 고양이도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못할 리 없지.” 여우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숲속 길 저편에서 인간들이 나타났다. 그래서 여우는 고양이한테 들은 대로 목을 가릉거리며 인간에게 다가갔다. 사랑을 기대하면서.....그러나 여우에게 돌아온 것은 인간의 몽둥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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