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건설 지원을 둘러싼 치킨게임
원전 건설 지원을 둘러싼 치킨게임
  • 승인 2014.11.2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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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두 대구대 교수·지리학
15년 동안 끌어오던 울진원전 협상이 끝을 맺었다.

11월 21일 국무총리와 산업부장관, 경북도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울진군과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이 합의서에 서명했다.

합의 내용은 한수원이 ‘2천800억원을 2년 이내에 지원’하고, 울진군은 신한울원전 3,4호기 건설에 적극 협조한다는 것이다.

이 행사에 참석한 국무총리는 “이번 합의는… 에너지 수급과 지역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상생발전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10월 강원도 삼척이 원전 관련 주민투표에서 85%의 압도적 반대를 보였고, 인접한 영덕군에서도 부정적 분위기가 심상찮은 상황에서, ‘파격적인 보상’으로 서둘러 합의가 이루어졌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원전 건설 지원을 둘러싼 이번 협상은 우선 진행과정을 보더라도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협상은 1999년 울진군이 원전 추가 건설 시 기존 부지 활용 등 보상 성격을 가진 14개 대안사업을 요구하면서 시작되었다. 협상 과정에서 양측은 2009년 대안사업 수를 8개로 줄이는데 합의했고, 정부는 신한울원전 1,2호기 건설 계획을 승인했다.

그러나 이후 양측은 대안사업 지원금의 규모를 놓고 줄당기기를 계속했다. 미온적이었던 한수원은 2010년 처음에는 600억원을, 2012년 2월에는 800억원, 6개월 후에는 1천억원 지원 방안을 제시했다. 그래도 울진군이 계속 버티자, 한수원은 2013년 말 ‘최종안’이라면서 1천960억원을 제시했지만, 울진군에 의해 거부되었다.

2014년 들어 울진군은 6개 대안사업비 2천억원과 교육 및 의료부문 지원금을 추가로 요구했고, 한수원은 ‘또 최종안’이라며 230억원 추가 지원을 밝혔다. 이에 대해 울진군은 1천억원 추가 지원을 요구했고, 결국 2천800억원에 타결된 셈이다. 한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고무줄 흥정’ 또는 ‘치킨 게임’처럼 “서로 졸렬하고 궁색하기 짝이 없다”고 지적했다.

치킨게임이란 마주 보고 달리는 자동차 경주처럼, 어떤 사안에 대해 대립하는 두 집단이 서로 양보하지 않을 경우, 결국 모두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되는 게임을 의미한다. 만약 협상이 결렬되었다면, 한수원은 지역주민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을 것이고, 울진군은 중앙정부의 강력한 요구를 감내만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울진군은 정부 정책에 노골적으로 반대할 수 없어 ‘울진군민범대책위원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항의집회 등으로 한수원을 ‘압박’했다. 협상 결과만 보면, 한수원이 결국 울진군의 요구를 들어준 셈이다. 그러나 울진에는 현재 원전 6기가 가동 중이고, 건설 및 계획 중인 원전이 모두 조성되는 2022년경에는 10기의 원전이 가동될 예정이다.

원전이 이렇게 밀집된 지역은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울진종합체육관 건립, 북면장기종합개발계획, 관동팔경 대교 가설, 상수도 확장, 한수원 휴양소 및 연구원 건립 등을 위해 1천960억원, 그리고 교육과 의료부문 개선사업에 840억원을 지원 받는다고 해서 지역이 앞으로 어느 정도 발전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한수원의 원전부품 비리 사건, 방사능 유출 은폐 사건,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 등은 원전에 대한 국민의 불안과 불신을 부채질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울진군, 한수원 그리고 중앙정부는 지원금 액수를 놓고 치킨게임을 벌일 것이 아니라 원전의 안전성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원전 감축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최근 국감에서 원전 안전에 대한 우려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방호인력과 방재장비가 턱없이 부족한데도 원안위는 현황 파악조차 못했다. 또한 대구시에는 원전안전, 댐 붕괴, 금융전산 혼란 등 대형 사고에 대처할 수 있는 행동 매뉴얼이 없고, 경북도 역시 고속철도, 항해안전, 항공운송 마비 등에 대한 대응 매뉴얼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대구와 경북, 특히 원전 밀집지역 및 그 주변지역들에서는 원전 사고에 대한 철저한 대책과 세부적인 대응 매뉴얼, 그리고 이에 따른 대비훈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지역주민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번 원전 협상에서 주민들의 의견은 거의 반영되질 못했다. 경북도지사와 국무총리가 ‘민심 달래기’용으로 지역을 방문한 것이 고작이었다.

행사에 참여한 국무총리는 열악한 부존자원과 제조업 중심 산업구조, 온실가스 감축의무 등을 내세워 원전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선진국들은 이미 1990년대부터 에너지 사용량을 절대적으로 줄여 왔으며, 이를 위해 산업구조 개선과 대체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부는 삼척시 원전 주민투표에서 85%의 반대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지금이라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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