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람회장 진풍경
박람회장 진풍경
  • 승인 2014.11.20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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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조 대구지방환경청 홍보팀장,수필가
늦은 가을이다. 각양각색으로 물든 단풍의 색깔만큼 축제의 종류도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페스티발, 문화제, 박람회 등의 이름으로 문학과 예술이 만나고, 지역의 특산품들이 한자리에 모여 풍성한 결실을 맺으려는 것이다.

국화, 코스모스 등 계절을 대표하는 꽃 잔치가 만발하고, 즐겨 마시는 커피나 차(茶)가 축제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는 등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올가을 축제가 이렇게 성행하게 된 것은, 세월호 침몰사고로 봄에 계획되었던 각종 행사가 취소되거나 연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달포 전, 필자도 박람회의 일원으로 부스 운영에 참여했다.

사흘간 진행된 박람회에는 대구·경북지역의 광역 및 기초 지자체와 특별행정기관, 공기업 등 40개에 가까운 크고 작은 부스가 저마다의 특색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전시와 홍보에 힘을 기울였다.

필자가 운영한 부스는 기관의 성격에 걸맞은 사진전시와 홍보동영상 상영, 화학테러 대응장비와 멸종위기 또는 생태계교란 야생생물의 박제품을 전시하고, 방문객을 대상으로 여러 종류의 리플릿과 기념품도 제공했다. 또 3행시 짓기를 통해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의 정도를 스스로 점검해보는 기회도 가졌다.

특이한 점은, 일부 노년층 관람객에게 있었다. 박람회를 둘러보고 기념품을 받는 것이 아니라, 기념품을 받기 위해 박람회장을 찾아다니는 분들 말이다. 박람회장이 문을 열기 전부터 가방을 매고 줄을 지어 기다리는가 하면, 전시 내용에는 관심이 없는 채 부스별 기념품을 탐색하는 표정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분들의 놀라운 총기는 다트게임이나 돌발퀴즈 등 부스별 이벤트 진행시간과 기념품의 종류를 줄줄이 꿰고 있음이 말해주었다.

웃지 못 할 사례는, 필자가 운영한 부스에서 일어났기에 더욱 기억이 생생하다. 몇 가지 종류의 생활필수품을 번갈아가며 나눠준 것이 기대심리를 더욱 부풀게 했을까. 부스 주변을 맴돌며 시나브로 때가 되기만을 기다리는 모습은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듯 안절부절 못했다.

때마침, 무리를 지은 고등학생들이 동아리 활동으로 방문을 했기에 환경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적도록 했다. 한 학생이 고심 끝에 펜을 꾹꾹 눌러가며 몇 자를 적고 기념품을 받으려는 찰나, 옆에서 서성이던 할머니가 개구리의 긴 혀가 한 순간에 파리를 잡아먹듯 물건을 휙 낚아채버린 것이 아닌가. 예상치 못했던 일에 깜짝 놀란 학생은, 못내 억울한 듯 바삐 걸어가는 할머니를 따라가 항변을 하는 것이었다.

결국 벌겋게 얼굴이 상기된 학생에게 원하는 기념품을 주는 것으로 무마시키기는 했지만, 보는 마음이 씁쓸했다.

부스 운영을 처음 하는 사람들은, 일흔을 전후한 관람객들이 줄을 지어 부스를 방문하는데 대해 매우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신선한 모습은 잠깐만 시간이 지나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다. 연로하신 분들이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수년째 그렇게 필자가 참여하는 축제의 현장에서 마주치는 분들이 계시기에 하는 말이다.

두세 바퀴를 도는 것은 차라리 애교로 봐드릴 수 있다. 그러나 박람회의 분위기를 흐리게 할 정도의 상품에 대한 강한 집착은 아무래도 지나친 것 같다.

맡겨놓은 물건 찾아가듯 잦은 순회는 고사하고, 부스 운영자들이 잠시나마 쉬기 위해 마련한 의자를 차지하는가하면, 접시에 담긴 사탕이나 과자류까지 막무가내 주머니에 집어넣는 행동은 참으로 보기에 민망했다.

불가에서는 탐진치(貪瞋痴, 욕심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것)를 삼독(三毒)이라고 하여, 깨달음에 장애가 되는 근본적인 세 가지 번뇌로 일컫는다. 선(善)을 이루며 올바르게 살아가기는 쉽지 않겠으나, 독(毒)은 멀리해야 할 일이다. 아무리 어른이라고 해도,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은 가리는 것이 마땅하리라.

낙엽이 뒹구는 지금도, 축제는 한창 진행 중이다. 누구라 할 것 없이, 관람객으로서 알맞은 체통을 스스로 지켜주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기대일까.

박람회장의 진풍경을 보며, 머지않아 다가올 필자의 미래를 슬그머니 그려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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