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는 환율이 하락세를 유지하던 상황이라 적지 않은 중소기업들은 원달러 환율의 급상승을 예상하지 못하고 그야 말로 ‘밑저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키코를 계약하였다. 그 이후 미국의 리먼 브라더스 사태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 등으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2009년 3월 월평균 기준으로 달러당 약 1,492원까지 상승)하면서 키코를 계약한 기업들은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발생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한 번이라도 발생하면 헤어나기 어려운 충격 소위 ‘꼬리위험(tail-risk)’을 기업들이 간과한 결과였다.
최근 대구경북지역의 각종 경제심리지표가 하락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대구 성서공단의 가동률은 2009년 4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지자체에서는 대책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필자도 지자체에서 주관하는 회의에 참석하여 지역 상공인들과 유관기관 대표들의 의견을 청취하였는데 각 참석자들은 해당 업계의 다양한 애로사항을 말하는 가운데서도 환율에 대해서는 이구동성으로 어려움을 토로하였다. 심지어는 과거처럼 외환당국이 나서서 환율을 고정시켜 달라는 말까지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출 중심의 성장으로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는 흑자를 지속하고 이에 따라 원화가 절상되면서 수출 기업들의 수익은 악화되고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여전히 원화 절상 폭이 경상수지 흑자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이 지난 10월 15일 미국 재무부는 의회에 제출하는 ‘환율보고서’에서 ‘한국 정부가 외환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해왔다’고 지적하면서 ‘원화의 추가 절상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우리나라 정부가 이와 같은 국제사회의 주장을 무시하고 국내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원화환율을 고정하거나 절상 폭을 현저히 줄이면 어떻게 될까? 과거 1980년대 후반과 같이 우리나라는 미국의 ‘환율보고서’상의 환율조작국으로 재지정될 수도 있다. 일단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미 정부가 원하는 환율협상을 시작해야 되고 그 협상에서 미 정부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경우 미국의 의회나 정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 상품에 대해 엄청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다행히 당시에는 양국간의 협상이 잘 진행되어 우리나라는 환율조작국에서 단시일내 벗어날 수 있었지만 향후 결과는 쉽게 예단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환율 조작에 따른 이해득실을 감안하면 현재로서는 우리 외환당국이 환율을 인위적으로 절하하거나 고정시키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면 일본은 어떻게 엔화를 절하시킬 수 있었을까? 이는 미국의 현 정부가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에서 회복되면 미국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엔화약세가 일정수준을 벗어나 미국의 국익을 저해할 수 있다고 평가되면 일본 엔화에 대해서도 절상압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같이 원화 강세로 인해 기업의 이익이 축소되더라도 환율에 대해서는 외환당국의 지원에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면서 대미달러 환율은 계속 하락하는데도 경상수지 흑자는 지속되고 있다. 최근 미국경제의 호조로 대미달러 환율이 다소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기업가들은 우리나라의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환율의 하락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수출 대상국을 다변화하거나 외환 관련 파생금융상품 등을 이용하여 환율변동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다만 ‘키코의 나쁜 추억’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이번에는 비용을 좀 더 부담하더라도 ‘꼬리위험’까지 제거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대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