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엔 ‘희망 고문’없는 세상을 …
2015년엔 ‘희망 고문’없는 세상을 …
  • 승인 2015.01.01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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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창 명예주필
여민컴 대표
2015년 새해는 60간지(干支) 중 32번째로 을미년(乙未年) 양(羊)띠 해다. 양은 성격이 온순하고 부지런하며 평화롭게 무리지어 산다. 하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풀을 찾는 먹이활동을 해야 하고 주변 환경변화와 위험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그래서 올해 우리 국민들의 살림도 양처럼 눈치 보며 사는 팍팍한 삶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벌써 그런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이 집계한 지난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대를 기록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가 점증하고 있다. 국제유가 하락 등이 원인이라고 하나 0%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 이후 14개월 만이다. 특히 지난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3% 증가에 그쳐 0.8%를 기록한 1999년 이후 가장 낮다. 국제유가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어 물가는 올해 추가로 떨어질 수도 있다.

원유 수입국인 우리로선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물가 인하를 환영해야 한다. 하지만 물가가 떨어지면 내수가 늘어야 하는데 소비가 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드니 문제인 게다. 우리 경제가 잠재성장력 저하에 따른 저성장 기조에 접어들면서 소비와 투자 증가세가 미약해진 것이 물가하락의 근본 원인이다. 게다가 1천조 원을 넘어선 가계부채도 소비를 억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갖은 경기부양책을 내놓지만 각 경제주체들은 허리띠를 더 졸라맬 뿐이다. 디플레이션이란 불길한 전조(前兆)가 아닐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더욱이 최경환 경제팀은 부동산경기 활성화 등 손쉬운 정책수단만 고집하면서 헛발질을 계속하고 있다. 경제전문가 71명은 최경환 경제팀에 대해 전원 C이하의 평점을 주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등 3명이 C+로 최고 점수였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D+학점으로 꼴찌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의 야박한 평가는 당연해 보인다. 만기친람(萬機親覽) 대통령 밑에서 ‘청와대 바라기’ 장관들이 받아쓰기에만 열중하니 존재감이 있을 턱이 없다.

경제전문가들은 C학점이라도 주었지만 대학생들은 아예 낙제점인 F학점을 매겼다. 최근 서울지역 대학가에 확산되고 있는 대자보 ‘최경환 학생 답안지 받아가세요’는 최경환 경제팀의 경제정책을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이 대자보는 “오늘날 한국 경제위기의 해결 방법을 쓰시오”라는 문제를 출제한 뒤 최 부총리가 부동산 경기 활성화,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 시간제 일자리 확대 등 정부 경제정책을 답안으로 제시했다. 이어 대자보는 정부 경제정책답안에 모두 감점을 주고 큼지막한 글씨로 낙제점인 ‘F’를 써 놓았다.

대자보의 낙제점은 허투루 평가한 게 아니었다. ‘이미 집값이 내려가는 상황에서 빚을 내 집을 사라고 말하며 소비를 활성화하겠다는 대책은 빚져서 빚 갚기에 불과하다’고 정부의 부동산경기 활성화대책을 비판했다. 또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에 대해 ‘고용이 경직돼 일자리가 부족한 것이 아니다. 제대로 된 안정적인 일자리가 부족하고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생활임금도 보장받지 못해 우리는 쓸 돈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대학생들은 ‘최씨 아저씨께 보내는 협박편지’라는 제목으로 학비, 취업난, 청년 자살 문제 등을 거론하며 최 부총리를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인 바 있다. 비정규직 종합대책도 정규직을 꿈꾸는 장그래(드라마 ‘미생’의 주인공)를 비정규직에 묶어두는 ‘장그래 양산법’이란 비판을 받았다. 최 부총리는 잇단 경제정책 비판에 대해 “생각이 같을 순 없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지 악화시키자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시장의 신뢰를 잃고 있음은 분명하다.

경제가 이 모양이면 정치라도 제자리를 잡아야 하나 정치는 더욱 한심하다. 우리 정치는 사회 각 분야의 이해와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내편 네편’ 편 가르기도 모자라 갈등을 오히려 증폭시키고 있다. 이러니 국민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싸잡아 비난하면서 정치혐오증만 키우는 상황이다. 여기에 통합진보당이 의석을 잃은 지역의 보궐선거 외에는 선거도 없자, 여야는 이젠 대놓고 집안싸움에 나섰다.

먼저 여당을 보자.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은 60%를 넘다가 30%대로 곤두박질치는 등 ‘롤러코스터 지지율’을 보였다. 모든 지역에서 지지율이 빠졌지만 특히 박 대통령의 정치적 텃밭인 대구·경북을 비롯해 영남 지역에서 지지율 하락이 두드러졌다. 전체 지지율은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40% 선으로 떨어졌고 11월 말 터진 ‘정윤회 등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으로 취임 이후 최저치인 37%까지 추락했다가 40%대를 겨우 회복한 상태다. 대구·경북 지역에선 2013년 말 70%(69%)에 육박했으나 지난해 말엔 56%로 떨어졌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지지율 추락에도 아랑곳 않고 여당인 새누리당은 집안싸움에 열중하는 인상이다. 그동안 잠잠하던 친박(親朴)들이 비박(非朴) 수장인 김무성 대표체제에 발톱을 드러내며 안다리를 걸었다.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모임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에서 선명하지 못한 당청 관계, 국민 역량과 관심을 분산시키는 개헌 논쟁, 당직 사유화 등을 비난하며 김무성 대표에 대한 노골적 불만을 표출했다. 박 대통령도 김 대표를 제외한 ‘성골 친박’ 중진 7명을 초청해 만찬회동을 갖는 등 견제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대통령이 아니라 계파 수장역할을 하겠다는 것인지 박 대통령의 처신도 이해되지 않는다. ‘비선 실세’논란에 이은 헛다리 행보다.

야당은 해법이 없는 난제 상황이다. 민주당에서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당명을 바꿨지만, 성형수술이 아니라 립스틱을 입술에 바르는 정도의 화장에 그쳐 아예 국민들이 외면하고 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란 호재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 사실상 참패했다. 고질적인 계파주의와 전략부재 등으로 반사이익은커녕 차린 상도 엎어버렸으니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게다. 이런 참에 다시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노(親盧) 비노(非盧)는 한판 싸움을 벌일 태세고, 입지가 좁아진 한 사람(정동영)은 딴살림 차릴 궁리만 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들여다보면 대한민국 국민노릇 하기가 참으로 만만찮다. 없는 수입에 세금 내랴 허리 휘고, 법과 도덕이 무너진 사회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야 하지만 ‘갑(甲)’들의 눈치를 보며 요령껏 해야 한다. 또 비상식이 상식을 능멸하고, 부정비리가 정의를 손가락질해도 눈감아야 한다.

하지만 그래도 ‘희망 사항’을 얘기해야 겠다. 세월호 사건과 같은 대규모 ‘행정 살인’ 대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정부, 일부 특권 국민이 아니라 모든 국민의 행복을 보장해주는 정부, 법과 상식이 통하고 진실과 양심이 불을 밝히는 사회, 비정규직이 정규직 되는 사회, 모두가 골고루 잘 사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광복 70주년을 맞는 2015년엔 이 모든 희망사항이 ‘희망 고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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