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울리기 전 우리는 거리로 뛰쳐나갔네
접어 올린 치맛단과 머리끈을 풀어제끼고
골목 끝이다 싶은 그곳에 햇살이 우굴거렸네
우린 흰꽃들로 쏟아졌네
쏟아져? 하늘에서 물줄기가 쏟아져? 찬바람에 싸라기눈이 쏟아져?
눈 맞으러 나간 아이들이 길바닥에 쏟아져?
영수야, 철희야, 상은아 ……,
일곱 살 열두 살 스무 살 ……,
살살살살살살살살살살살살살살살살살살살살
맞댄 살, 휘어진 살, 부서진 살, 거꾸로 매달린 살, 소용없는 살
무명의 흰꽃들이 우수수 떨어졌지만
우리가 허리 숙여 주을 수 있는 꽃잎은 하나도 없었네
라면이 불고 노래가 흘러가고 영화가 시작될 시각이 지나고 있었네
이름 위에 쌓이는 이름,
이름 위에 쌓이는 이름,
삼십 년이 흐른 지금, 하지만 삼십 년 전인 이 거리
골목 끝이다 싶은 그곳에 햇살이 덕지덕지 피었네
우린 알고 있네, 그 빛이 보이는 것들을 모조리 집어 삼키는,
커다란 입이라는 것을,
▷▶이수진 2009년 ‘현대시’로 등단
<해설> 암울한 시대가 있었다. 거리에 어우러져 함성이 하늘을 찌르고 무명의 흰 꽃들이 떨어지고 거리마다 그림자와 햇살이 뒤엉킨 거리. 한 시대의 영화의 장면과도 같다. -안종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