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시장 1 지구 태우는 옷, 가게를 지나친다
한 번도 사람을 입어 보지 못한 옷이,
한 번도 사람을 입지 못할 옷이
망자를 따라간 어느 언덕에서
불 태워지면 그뿐일 옷이
태우는 옷, 이름을 달고
매대에 차곡차곡 개켜져 있다
생애 사람 한 번 입지 못했는데 옷이라면
생애 행복 한 벌 입지 못한 몸도 삶일까
생애 불행 한 번 벗지 못한 영혼도 삶일까
옳은 시 한 편 못 쓴 시인도 시인일까
옳은 직업 한 번 못 가진 사람도 사회인일까
출생과 동시에 죽은 동생도
병상만 전전하다 처녀귀신 된 고모도
저 옷과 함께 불태워졌다
어떤 옷은 고관대작을 입다가 벗기도 하지만
어떤 옷은 평범한 삶 한 벌 꿰입지 못하고 일생이 저문다
저무는 지도 모르는 시렁 위에 가만 얹혔다가 어느날 팔려나간다
아무런 구김살도 없고 한 점 얼룩도 없어
깨끗함이 공포로 다가오는 태우는 옷 가게를 지나치면
내 심장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바람 불어와
때 묻은 내 옷자락을 휘날리고 간다
▷▶이해리 대구 출생. 2003 평사리문학대상. 시집 ‘철새는 그리움의 힘으로 날아간다’ ‘감잎에 쓰다’
<해설> 삶과 사랑도 늘 함께 할 때는 소중함을 모르고 잃어버린 후에야 비로소 알게된다. 삶이 빈약하지도 않고 황폐하지도 않다. 이 세상에 어느 물건 하나라도 버릴 것이 없다. 언젠가 필요에 의해서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안종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