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들판에 빈 집 한 채
울도 담도 없어도
지붕에는 기와를 얹었다.
문도 하나 없어
바람은 하냥 이 방 저 방을 서성인다.
떨어지는 흙을 벽에다 쥐고
끙끙 세월에 맞선다.
저 집을 떠나면서
주인은 어제처럼 내일도 살 것같이
처마에는 장작도 재여 두었다.
저 빈 집에도 한 때는 사람이 살았지
저 빈 공간에도 한 때는 사람이 살았지
저 빈 마음에도 한 때는 사람이 살았지
저 빈 가슴에도 한 때는 사랑이 살았지
저 빈 감나무에도 아내와 어린 자식들 주렁주렁 열렸지
저 빈 집에는 사람이 모두 떠났지
저 빈 공간에는 사람이 모두 떠났지
저 빈 마음에는 사람이 모두 떠났지
저 빈 가슴에는 사랑이 모두 떠났지
눈 내린 들판에
하얀 눈을 머리에 쓰고
텅 빈 한 늙은 사내가 집이 되어 서 있다.
▷▶정대호 1958년 경북 청송 출생. 경북대 국문과 및 대학원 졸업. 1984년 ‘분단시대’ 동인으로 활동. 시집 ‘다시 봄을 위하여’, ‘겨울산을 오르며’, ‘지상의 아름다운 사랑’, ‘어둠의 축복’. 평론집 ‘작가의식과 현실’, ‘세계화 시대의 지방문학’, ‘현실의 눈, 작가의 눈’
<해설> 그 누군가 가족과 함께 사랑을 이루고 살았을 빈 집. 시인의 눈길에서 고스란히 시골의 풍경이 잘 녹아져 내려 있다. 감나무에도 가족들의 사랑스런 모습이 주렁주렁 매달린 표현이나 텅 빈 한 늙은 사내가 집이 되어 서 있는 표현이 사뭇 부럽다. -안종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