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조각’ 60年 뿌리를 만난다...‘최만린 展’
‘한국적 조각’ 60年 뿌리를 만난다...‘최만린 展’
  • 황인옥
  • 승인 2015.05.0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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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까지 수성아트피아

한국 추상 조각의 개척자

자연의 본질, 작품에 녹아

조각 60여점 등 85점 전시

“예술은 이론이 아닌 본질”
전시작-태(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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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린
동경미술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한 박승구 선생이 경기 중학교에 부임해 조각반을 만들어 최만린을 조각반에 들어올 것을 권고했다. 결국 최만린은 조각반에 들었고, 박 선생으로부터 조각의 기초를 배웠다.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스승인 박 선생은 ‘관음보살상’을, 제자 최만린은 ‘친구 얼굴’을 출품해 박 선생은 문교부장관상을 타고 최만린은 입선했다. 경기 중학교 은사였던 박승구 선생과의 운명적인 만남은 최만린을 조각가로 이끌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서울대 상과대학 경제학과를 지원했어요. 전쟁의 폐허 위에서 먹고 사는 일이 최우선이라는 현실적인 선택이었죠. 하지만 제가 바라는 마음의 길은 물질적인 것보다 마음의 양식을 만들어 세상과 더불어 나누는 예술가의 삶이었어요. 그래서 결국 이듬해 조소과로 선회했죠.”

한국 추상조각의 개척자인 최만린(79)의 작품전이 수성아트피아에서 최근 시작됐다. 최만린은 일제강점기와 한국동란 등 한국의 근현대 격변기를 살아온 해방 이후 국내에서 미술 교육을 받은 1세대 작가다. 서울대 조소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지낸 한국 미술계의 대표 인사다. 서울대 미술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조각가의 길을 병행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그의 첫 대구 나들이이자 수성아트피아 개관 8주년 기념전을 겸한다.

최만린의 60여년 조각 인생의 일관된 화두는 ‘한국 조각의 정체성 확립’이었다. 한국적인 조각이야말로 서양 조각의 아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작용했다. “서양 조각의 아류에서 벗어나 작고 가난하고 초라하지만 내 마음이 가는 우리의 조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농부가 씨앗을 뿌려 농사를 짓듯이, 마음의 양식을 생산해서 사람들과 더불어 나누는 것이 예술가의 삶이고, 그 생산품이 우리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구체적 형태는 없지만, 생명력으로 꿈틀대는 그의 ‘한국 조각의 형상 찾기’는 물질보다 정신을 추구하는 ‘동양성’으로 전개됐다. ‘생명’, ‘근원’, ‘뿌리’, ‘비움’ 등이 대표 주제들이다.

최만린의 조형적 시작은 불안한 시대의 인간 초상을 형상화한 ‘이브’ 시리즈로부터 출발한다. 이후 60년대에 한자의 획에서 드러나는 표상을 작품한 ‘천-지-현-황’ 시리즈, 장승 이미지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일-월’ 시리즈를 선보이며 한국적 조각 찾기의 층위를 더했다. 70~80년대의 생명 이미지를 조형화한 ‘태’ 시리즈, ‘점’ 시리즈에서는 자연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주제로 조각 세계를 확장했다.

특히 ‘이브’시리즈와 함께 그의 대표작인 태(胎) 시리즈는 자연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관심을 대변한다. 인간이나 자연에 대한 외형적 형의 탐구가 아닌 생명현상으로서의 본질에 대한 탐구가 핵심이다. ‘점’ 시리즈는 공간개념을 갖게 하고 공간이 점의 형태를 시각화시킨다는 사실을 형상화한 것으로, 생명력의 약동과 유기적인 성장 등을 구체화했다.

그가 작업의 종착지점에서 보여준 작품은 ‘空’. ‘원圓(○)’시리즈라고도 한다. 그의 ‘○’은 무한대로 뻗어가는 우주적 창조 철학인 ‘원圓(○)’의 개념이다. 이전의 ‘점’과 ‘무’, ‘맥’과 ‘태’의 발전된 개념으로, ‘무(無)’로서의 ‘점(點)’을 확장해 대우주와 지구, 즉 일월천지(日月天地 )일체를 둥글게 아우르는 정신이다.

60여년 동안 조각에 다양한 동양성을 녹여온 작가에게 조각에 구현한 일관된 정신을 구하자 정작 그는 “논리적 체계화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잘랐다. 그는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 이론적으로 아무리 풀이해도 언어로는 그 사랑을 온전히 정립할 수 없다”며 “그저 대 우주 속의 지구, 그 지구 속에서도 점 하나와 같은 존재이지만 성실하게 우리의 생명을 지키며 나누고 사랑한 결과물이 나의 조각”이라며 그가 그랬듯 관람자 역시 논리적 설명보다 마음으로 작품을 감상할 것을 주문했다.

1958년부터 최근작까지 조각 60여점, 드로잉 26점 등 총 86점을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22일까지. 053-668-1566.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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