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시론>대학 강사들이 추석 보너스를 받았다
<팔공시론>대학 강사들이 추석 보너스를 받았다
  • 승인 2009.10.08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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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로 (논설위원)

계명대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난 9월 18일 계명대학교는 교수와 직원뿐만 아니라 이번학기 이 대학에 출강하는 모든 강사들에게 일률적으로 1백만 원의 보너스를 지급하였다.

그 보너스는 학교에서 지난 학기에 각종 비용을 절약하여 모은 기금에서 나왔다고 한다. 지금껏 대학 강사들이 보너스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예기치 않은 보너스를 받고 일부 선생님들은 의아해 했지만 대부분 보너스를 받은 선생님들의 표정은 밝았다.

대학 강사들에게 학기 초 첫째 달은 강의료가 없는 달이다. 즉 3월과 9월은 대학 강사들에게 때 아닌 보릿고개인 셈이다. 강의료는 한 달 뒤에 지급되는 것이 일반적 관례이다. 그것을 며칠 당겨 지급해 주는 것도 학교 측의 배려라고 할 수 있다.

대학 강사는 전문직에 속하는 연구자이다. 석사과정을 취득하고 난 뒤 박사과정 재학 중에 한편으로는 연구를 위해서 한편으로는 학비나 생활비를 위해서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다. 경제적 형편 때문에 강의와 연구를 병행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길이다. 뒷날 정규직을 얻게 되면 형편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어려움을 견뎌낸다. 그 시절에는 아직 대학원 학생 신분이기 때문에 제도적인 보호를 받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어떠한 사회적 보호도 없이 홀로 남게 된다. 가족이 없다면 대학 강사들은 이 사회의 외톨이다. 학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수도 아니다. 강의가 주어지는 동안은 교수 역할을 하고 있지만 강의가 끝나면 실업자이다. 대학에서 강의도 맡고 수강생들에게 성적도 주지만 그들은 실체가 없다.

이러한 대학 강사들의 처지를 두고 사회에서는 `보따리 장사’, 캠퍼스의 `메뚜기족’이라고 부르고, 심지어는 `대학 강의실의 유령’이라고 까지 일컫는 경우도 있다. 대학 강사들이 스스로 그렇게 부르지는 않는다. 주위에서 그들의 삶이 애처로워 붙여준 별명일 것이다.

대학 강사들은 전문직에 속하는 박사학위 소지자들이어서 비정규직보호법의 대상도 아니다. 지난 학기 초에 석사학위 소지자 즉 박사과정에 있는 많은 대학 강사들이 비정규직보호법 때문에 강사자리조차 잃어버렸다. 확인된 것만 하더라도 1천명이 넘는다고 한다. 비정규직보호법이 그들을 학교에서 내쫓아버렸다. 이미 배정받은 강의를 돌려주면서도 그들은 묵묵히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지방 사립대학들이 절반에 가까운 강의를 대학 강사들에게 맡기는 것은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전임교원을 확보할 형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적은 강의료를 지급하고 강사들을 많이 쓰면서 타산을 맞추어간다.

학교 재정을 이유로 강사를 많이 채용해야 한다는 대학에 전임을 늘리라거나 강사료를 현실화하라는 요구는 먹혀들 것 같지 않다. 대학 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국회의원들이 법안을 상정하려고 노력하지만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의지와 재정 지원이 관건이며, 정부의 무관심과 무대책이 근본 원인이다.

학문에 대한 열정만으로 강사 생활을 고집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는 희망이 있을 때 생겨난다. 여태까지 스스로 학비를 마련하였고 어떤 제도적 지원도 받지 못한 채 학문에 투자 해 왔다. 개인적 열정만으로 지금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넉넉한 강의료를 받아 풍족한 삶을 누리겠다는 욕심을 갖고 있는 대학 강사는 드물다. 그들은 적어도 바라던 연구를 계속할 수 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학문 활동을 포기하지 않을 정도 최소한의 물질적 조건과 제도적 뒷받침이 갖추어지기를 희망한다.

대학 강사에 대한 처우 개선을 위해서는 아직도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 하지만 대학과 대학 강사들의 관계를 상생과 동반자의 관계로 다시 정립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대학 강사가 있어야 대학이 유지될 수 있듯이 대학이 있어야 대학 강사들이 연구와 학문 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

계명대학교가 추석 명절을 맞아 강사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했다는 뉴스가 대학과 강사들의 새로운 관계 정립에 자극제가 되었으면 한다. 대학 강사들의 강의 여건과 그들의 실상을 살펴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게 되기를 희망한다.

강의만 끝나면 헤어지는 관계가 아니라 한 학기를 강의하더라도 학교와 학생들에게 애정과 관심을 갖고 강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란다. 그 혜택은 모두 그 대학과 학생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출강하는 대학으로부터 보너스를 받는 대학 강사들이 더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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