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가장 느린 예술”…LTE시대 ‘균형의 미학’ 심는 시인
“시는 가장 느린 예술”…LTE시대 ‘균형의 미학’ 심는 시인
  • 황인옥
  • 승인 2016.08.07 15: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학다방 시인보호구역’ 설립대표 정훈교 시인

대형자본서 예술가 보호 노력

독립책방·시집전문서점 운영

잡지 출품작에 원고료 꼬박 지급

“고료 미지급 업계 관행 깨고파”

방문객 관심사 ‘맞춤詩’ 호응

시·타 장르 융합교육도 운영

“좋은 콘텐츠로 문학부흥 꿈꿔…

사회적기업 전환해 토대 다질것”
/news/photo/first/201608/img_204609_1.jpg"JEON1905/news/photo/first/201608/img_204609_1.jpg"
전국 최초 시집전문서점인 ‘문학다방 시인보호구역’을 운영하는 정훈교 시인은 스스로를 문화예술경영자라고 칭하며 ‘시인보호구역을’ “예술의 ‘창작’부터 ‘제작’까지 아우르는 예술인들의 보호구역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전영호기자


시, 시인, 시집이 죽었다고 말한다. 더 이상 시를 읽지 않는 세태에 대한 진단은 이처럼 절망적이다. 오죽하면 통신 언어로 소통하는 요즘 세대에게 ‘시는 갑골문자 같은 것’이라고 선을 그었을까? 젊은 시인 정훈교에게 시의 몰락은 ‘남의 집 불구경’이 아니다. 시인으로 살아갈 날이 창창하고, 토해 내야 할 시가 내면 깊숙이에서 아우성치기 때문이다.

시인 정훈교가 지난해 11월 문을 연 ‘문학다방 시인보호구역’은 시가 죽은 시대를 보고 있을 수만 없었던 젊은 시인의 몸부림이다. ‘시의 부활’이라는 거창한 목표까지 바라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이 땅의, 이 시대의 젊은 시인이라면 최소한의 실천 하나쯤은 해야 한다는 사명감의 발로다. ‘사명감’, 단어의 깊이만큼 예술·인문 공동체를 표방하는 ‘시인보호구역’에 풀어내는 그의 철학은 시를 넘어 문학과 예술 전반을 아우른다.

◇ 전방위 문학부흥을 꿈꾸는 ‘시인보호구역’

- ‘시인보호구역’은 어떤 공간인가?

“지역에서 사라진 문학다방의 맥을 현대적으로 잇는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공간문화사업, 벽화그리기 사업, 출판 사업, 출강 및 교육 사업 등 시와 문학을 중심으로 전반적인 문화사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 문학관련 사업에는 어떤 프로그램이 있나?

“시창작 교실, 책쓰기 교실, 맛있는 시읽기, 인문학 특강, 작가와의 대화, 문학기행 등 시를 중심으로 문학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 타 장르간의 융합도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통섭과 융합의 시대에 문학도 발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으로 문학과 미술, 문학과 연극, 문학과 노래 등의 보다 확장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직업체험 및 장르 콜라보 교육이나 스토리텔링 및 예술적 표현기술 심화 교육 등이 커리큘럼으로 구성돼 있다.”

- 출판사 설립까지 감행했다.

“‘도서출판 시인보호구역’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이 출판사를 통해 월간 정기간행물 ‘시인보호구역’을 발간하고, 문학인들의 전문서적과 출판을 원하는 일반시민들의 책도 출간하게 된다. 이 출판사는 1인 1책 시대를 지향한다. 보다 쉽게 책을 출판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취지다.”

- 월간 ‘시인보호구역’은 대구를 대상으로 하는 잡지인가?

“처음 16페이지로 기획했는데 20페이지로 늘어났다. 지역 문화예술을 중심으로 하고 싶었지만, 정기구독하시는 분이 타 지역이 훨씬 많다. 그래서 지역에 국한하지 않고 전국잡지로 가닥을 잡았다. 잡지는 신작시 소개, 예술가 소개, 문화칼럼, 독립문화공간 소개, 독자 투고 등 다양하게 구성된다.”

- 출판사 운영은 어떻게 되나?

“지역의 시인이나 문학인마저 서울의 유명 출판사만 바라본다. 그것이 과연 최선인가 생각해봤다. 우리가 중앙이 될 수도 있는데, 왜 지역은 서울만 바라보는가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그래서 출판사를 설립했다. 우리 출판사는 시집, 소설집, 평론집 등 다양한 문학서적을 출간한다.”

- 변방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철학이 깔려있다고 보인다.

“서울중심은 여전하지만 페이스북 등의 SNS를 통해 기존의 질서에 균열이 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내 첫 시집 출간도 그랬다. 페이스북에 올린 시가 출판사의 눈에 띄어 시집 출간까지 이어졌다. ‘시인보호구역’은 ‘서울 중심이 잃어버린 가치를 변방이 회복할 수 있다, 그리고 중심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실현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 전국 최초 독립책방 겸 시집전문서점으로 전국적인 관심 끌어

‘시인보호구역’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콘텐츠는 독립책방과 시집전문서점이다. 이는 전국 최초이자 유일하다. 시집전문서적은 입소문을 타고 전국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독립책방은 지난 해 11월, 시집서점은 6월에 문을 열었으니 채 1년이 되지 않았다.

- 독립출판물과 시집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서점은 전국 최초다. 시작한 배경은 무엇인가?

“‘시인보호구역’에 시집을 진열해 놓았는데 (시집을) 팔라고 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었다. 이 시집들은 내가 보기 위해 진열해 놓은 시집이라 팔기에는 곤란한 데도 팔라고 하니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서점을 시작하게 됐다. 전국은 물론이고 지역에도 괜찮은 시인들이 많다. 이 서점을 통해 이들의 시집과 독자들을 연결하고 싶다. 물론 독립출판물도 문학 관련된 것을 주로 취급하고자 한다.”

- 어떤 시들이 대상이 되나?

“베스트셀러 시인들의 작품보다 작품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또 지역 시인과 젊은 시인들의 작품을 적극 선보일 계획이다. 시가 부활하기 위해서는 토대가 튼튼해야 하는데, 그 토대를 이 서점이 만들어가겠다는 것이다.”

- 다른 서점과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우리 서점은 시집을 판매하는 방식이 좀 다르다. 일종의 맞춤형 판매방식이라고 해야 하나? 시집을 구매하려는 사람과 충분한 대화를 나눈 후에 그 사람의 관심사나 철학과 맞는 시집을 권한다.”

- 시간과 공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시는 가장 느린 예술이다. 빠르게 만을 외치는 시대에 느리게 가는 삶도 필요하다. 그래야 균형이 잡힌다.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느린 문학인 시집을 고르는 일인데 충분히 소통하며 느리게 고르는 것은 당연하다.”

- ‘느린 선택’은 만족도와도 연관돼 보인다.

“그렇다.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소통하고 시집을 고르면 만족도가 높아진다. 이는 결국 계속해서 시를 읽을 가능성을 높인다. 시의 부활은 거창한 것도 필요하겠지만, 이처럼 작은 노력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 나의 철학이다.”

◇ 사회적 기업 전환으로 더 큰 가치 만들고파

정훈교는 2012년 ‘김광석다시그리기길’ 내에 집필실 ‘시인보호구역’을 마련하고 직장인과 시인을 병행해왔다. 이 공간에서 또래 시인들과 시를 공부하며 전국 최초 범예술인 협동조합 ‘청연’을 설립했다. ‘청연’은 미술, 연극, 국악, 문학, 그림, 공연, 음악, 디자인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 20여명이 회원으로 예술제를 선보이고 예술인 인큐베이팅과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하지만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 공존의 히트를 기록하며 관광객이 폭주하자 보증금 없이 월세 10만원의 조건으로 세들어 살던 공간의 자산가치가 상승하면서 내몰리다시피 ‘김광석다시그리기길’에서 나왔다. 지난해 3월의 일이다. 그로부터 8개월 후 월세가 싼 지역으로 자리를 옮겨 ‘문학다방 시인보호구역’의 문을 열었다. 10여년을 근무해온 직장도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본격적으로 문학에 인생을 걸었다.

-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를 선언한 배경이 궁금하다.

“김광석거리에서 문화와 예술이 상업적 자본에 의해 파괴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경험했다. 30년 넘게 생업을 이어오던 시장 상인들도 술집과 커피숍에 자리를 내줬다. 자본 앞에 모두가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예술마저 자본에 의해 변질되기도 했다. 그런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예술인들을 보호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런 일들을 직장생활과 병행하는 것은 힘들다.”

- 예술가들을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 실천들은 무엇인가?

“잡지 ‘시인보호구역’에 게재되는 시나 칼럼들에 대해 일정의 원고료를 지급하고 있다. 또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에서 첫 출판한 ‘젊은 시인 12’에 이어 야심차게 준비하는 출판 프로젝트가 있다. 선주문 형태의 클라우드 펀딩을 통해 詩에세이 ‘당신의 감성일기’를 8월 중 출간할 계획이다. 시선집 형태인데 시인의 시에 감상(해설)을 달았고, 시를 출품한 시인들에게도 원고료를 지급했다. 대개 이런 경우 원고료를 지급하지 않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 있는데 시인보호구역은 철저하게 고료를 지불하고자 한다.”

- ‘시인보호구역’ 운영자금은 어디서 충당하나?

“찾아주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다방과 시집전문서점을 운영하지만 수입은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까지는 개인 자금으로 운영하고 있다.”

- 전업 작가 개인자금으로 운영하는 열악한 상황에서 원고료까지 챙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상징성 때문이다. 국내 유명 출판사들도 관행적으로 시인들의 시를 사용할 경우 원고료를 지급하지 않는 것이 다반사다. 이는 잘못됐다. 이런 관행을 변방의 작은 공간에서부터 깨면 여타의 출판사들도 지키려고 애쓰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하고 있다.”

- 계속해서 개인 자금으로 운영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할 준비를 하고 있다. 매월 300부를 찍어 200부는 정기구독자에게 발송하고 나머지는 무료 배포하고 있는 월간 잡지나 출판사업 등 다양한 사업이 추가되면서 개인 차원을 넘어섰다. 사회적기업을 통해 다양한 예술인들의 철학을 하나로 묶어 더 큰 가치를 만들어갈 계획이다. 부족한 자금은 클라우드 펀딩이나 후원회를 통해 마련할 생각이다.”

- ‘문학다방 시인보호구역’이 어떤 공간으로 성장해 나가길 바라나?

“문학인들만의 사랑방이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다행히 이곳을 찾는 분들의 연령과 계층, 심지어 성별까지 다양하고 지역 분포도도 전국단위다. 내 첫 취지대로 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하면 더 가치 있는 콘텐츠와 가치로 시민과 예술인들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서로 도움이 되는 공간으로 거듭났으면 한다.”

- 스스로를 문화예술경영자라고 칭한다. 이유는 무엇인가?

“다변화된 시대일수록 융합이 대세다. 예술도 이 조류를 거스를 수 없다. 이제는 ‘창작’을 넘어 ‘제작’까지 원스톱으로 가야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 물론 그 전제에 예술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내게는 이 모든 것들이 피부에 와 닿고, 어쩌면 자연스런 일인지도 모르겠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