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출신도 아니고 뚜렷한 공적 없는데 웬 기념비?
지역 출신도 아니고 뚜렷한 공적 없는데 웬 기념비?
  • 전규언
  • 승인 2016.10.13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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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유학자 간재 기념비 추진

유림 등 “예산 낭비” 반발
문경 출신도, 그렇다고 지역사회에 특별한 흔적을 남기지도 않은 한 유학자의 기념비 건립을 두고 지역 여론이 곱지 않다.

‘간재 전선생 강학비 건립추진위원회’는 12일 문경시 농암면 내서리 574-1에 선생의 이 지역 강학활동을 기념하는 강학비 건립 기념식을 가졌다.

이 기념비 건립에는 문경시에서 3천만원의 예산을 지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조 후기 유학자인 간재(艮齋) 전우(田愚) 선생(1841~1922)은 전북 전주출신으로, 당대 성리학의 대가 임헌회의 문하에서 20년간 학문을 닦았다.

고종 19년 잠시 벼슬길에 나갔다가 곧 사임한 뒤 학문 연구와 주로 전북지역에서 후진을 위한 강학활동에 전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10년 한일합병 이후 낙향한 선생은 주로 지금의 전북 군산(신시도)과 부안(계화도)의 앞바다에 있는 섬을 옮겨 다니며 강학활동을 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추진위측은 선생이 41세이던 1881년께 가은 선유동 등 문경 일원을 답사하기도 했으며, 1884년 이후 5년여간 강학비 건립지 인근의 심원사, 원적사 등지에서 강학활동을 벌여 소수의 제자를 배출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주최측이 밝힌 간재 선생의 연보에 따르면 강학활동기간이 2년여에 불과하고 그 기간 활동장소도 문경을 비롯한 충북진천과 상주 등지를 돈 것으로 나타났다.

또 주최측이 스스로 ‘소수의 제자배출’이라고 밝혔지만, 인문록에 뚜렷한 지역출신의 제자 이름에 대한 기록도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선생이 40대 초반 잠시 문경 둥지를 돌며 경승지를 유람하고, 단기간 경유지에서 강학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지역 유림의 한 인사는 “뚜렷한 족적도 없는 다른 지역 출신 학자의 기념비까지 우리 돈 들여서 세워 줘야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이해가 안 된다”면서 “조선 중기 문신이요 학자인 퇴촌 고상안 선생 등 지역출신 인물에 대한 현정사업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엉뚱하게도 동서화합과 교류 등의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는 일부 유림의 행태가 한심하다”고 개탄했다.

다른 한 인사도 “사업취지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일부러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면서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인물의 기념비까지 우리 예산을 들여 우리지역에 세운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질타했다. 문경=전규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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