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월 12일까지 대구미술관
몸의 일부 비어있는 ‘인간’ 통해
현대사회에 대한 위기의식 표현
“예술가는 철학적 질문 던지는 존재
50년간 진실성 갖춘 예술 위해 노력”
“줄기와 잎만 보고 뿌리를 놓치면 나무를 온전하게 보지 못한다. 나는 예술가로서의 태도나 작품 속 주제 모두 뿌리까지 이해하려는 온전함을 추구했다.”
‘온전함’에 대한 분기(奮起)가 처음 의식을 뚫고 올라온 시기는 30대 후반 무렵이었다. 생계수단으로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범죄일수 있다는 자각이 들면서 교직생활을 청산했다. 진정성과 도덕성에서 스스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온전한 예술가가 되고팠다.
“진실한 예술가가 되고싶어 교직생활을 접었는데, 내 앞에 40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게 주어진 물리적인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하는 절박함이 올라오면서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그림에 대한 열망이 커졌다. 그래서 부산 근교에 철마라는 작업실을 마련하고 전업작가의 삶을 시작했다.”
경남 고성 출신으로 중앙대에서 회화를 전공한 이태호의 작품에는 억새와 물결이 화폭 전면에 배치되는 2005년부터 최근작을 제외하고는 주로 인간이 화폭을 장악한다. 초기작부터 2004년까지의 작품에 공통적으로 인간이 등장한다. 하지만 몸의 일부가 ‘빈 곳’으로 처리되어 있다. 누구인지 가늠하기 힘들게 얼굴을 흐릿하게 처리하거나 얼굴과 몸의 일부를 텅 비워 두고 그 속을 나무나 구름 등의 자연으로 채웠다.
그에게 ‘빈 곳’은 은유적 장치다. 점점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인간사회에 대한 위기의식의 반영인 것. “세상이 인간중심으로 돌아가는 상황이 오만과 허위로 다가왔다. 그런 오만함이 자연을 훼손하고 대형 사고들로 이어졌다고 봤다. 예술가는 그런 상황을 드러내고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작품 속 ‘빈 곳’은 그런 사회현상에 대한 ‘바라보기’였다.”
결백증에 가까우리만치 지행합일을 실천하고자 했던 이태호가 시대 상황 속에 놓인 인간을 다큐적이며 은유적인 현대적 서사로 형상화하던 것에서 철학적인 고찰로 급선회한 것은 10여년전 부터다. 대표작인 ‘억새’ 연작을 통해서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겸손한 마음으로 자연과 소통하고, ‘물결’ 연작에는 세상 너머의 세상, 존재 너머의 존재와의 조우를 시도했다.
“예술가는 외롭고 고독한 멜랑꼴리아다. ‘우리가 정한 기준이 맞나’라는 의문에서부터 시작해 근원과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외롭게 던져야 하는 존재들이다. 지극하게 질문을 하다보면 경계 밖 기척도 들을 수 있지 않겠나?”
온전한 예술가를 꿈꾸는 이태호에게 그림은 자기응시다. 생각의 궤적, 철학적 질문을 구체화하고 깨달음을 향한 여정의 끈을 지리하게 붙잡는 장치다. 불현듯 그가 ‘그림의 자성(磁性)’을 언급했다. “그림도 인간처럼 향하고자 하는 방향이 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 의지대로 그림을 끌고 가면 졸작이 되기 십상이다.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앞에 있는 화면과 시간을 응시하며 그림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 순응하는 것이다.”
제16회 이인성 미술상 수상자(2015년 수상) 수상자로 양면성을 드러낸 초기작부터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우리시대의 초상’ 연작, ‘회상’ 연작, 먹 작업을 통한 ‘억새’와 ‘물-결’ 연작 등을 전시하는 대구미술관 이태호의 ‘그림자, 구름, 그리고… 이태호 회화의 멜랑꼴리아’전은 내년 2월 12일까지 2, 3전시실에서. 작가의 예술세계를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아티스트 토크는 오는 26일에. 053-790-3000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