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미학으로 풀어내다
상처, 미학으로 풀어내다
  • 황인옥
  • 승인 2016.11.1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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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진 ‘ㅠㅠ’展
27일까지 B커뮤니케이션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던 20대
뜨개질·바느질 등 창작에 몰두
작품에 다양한 ‘얼굴’ 등장시켜
상처의 흔적·치유과정 그려내
유유전
유유진 작 ‘몽상망상’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도 작품 활동은 전무했다. 세상과 일정 거리를 두고 집순이로만 살았다. 이유는 자명했다. 세상과 맞선다는 것은 감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고, 가볍게 소통하는 것마저 힘에 부대꼈다. 누구를 만나도 주눅이 들었고, 그런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 명랑한 척을 했지만 언제나 불안정하기만 했다.

시소처럼 극한을 오가는 감정에 포위돼 소모적인 날들이 연속되는 속에서도 생산적인 활동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집착에 가까우리만치 집중했던 방꾸미기를 반복했고, 한 차례의 꾸미미가 끝나면 친구들을 불러 보여주곤 했다. 방꾸미기가 이 시기 유일하게 풀어냈던 미학활동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작품을 만들고 전시하는 일과 맥락이 닿아있었다. 무의미한 날들의 연속이었지만 작가적 DNA의 불씨는 꺼트리지 않았던 것.

“정신적으로 조금은 불안정했어요. 세상보다 집이 편했어요. 은둔자처럼 집에만 집착했죠. 방꾸미기는 제 안에 응어리를 해소하는 유일한 통로였던 것 같아요.”

유유진의 ‘ㅠㅠ’전이 방천시장 내에 있는 B커뮤니케이션에서 27일까지 열리고 있다. ‘ㅠㅠ’는 휴대전화나 인터넷 등의 모바일에서 사용하는 단축키로 ‘눈물’이라는 감정을 총칭한다. 그녀는 이번 전시에서 제목 속 단축키처럼 ‘눈물’이 날 만큼의 아픈 감정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기자와 마주한 유유진은 순수하고 앳돼 보였다. 조금은 영악한 여느 34살의 여성과 달랐다. 단번에 이야기를 꺼내놓기보다 간을 보듯 감질나게 대화를 이어갔다. 상대방의 반응을 본 후 곶감 꺼내놓듯 하나씩 속마음을 보여줬던 것. 이러한 태도는 그녀의 일상이다.

“아버지가 굉장히 엄격하시고 잔소리가 많으셨어요. 저 잘되라고 하시는 말씀이었지만 제가 감당하기에는 벅찼죠. 늘 주눅이 들어있었고, 불안해했죠. 20대에는 또 친구들의 죽음도 경험해야 했어요. 불안이 더욱 가중됐고, 자존감은 극도로 떨어졌죠.”

이번 전시에는 광목이나 뜨개질로 만든 복면에 드로잉이나 바느질, 꼴라주를 가미한 작품 5여점을 걸었다. 뜨개질이나 바느질은 마음이 불안할 때 매달렸던 일종의 마음 가라 앉히기용 처방이었다. 살기 위한 몸부림과도 같았던 행위들이 자연스럽게 작업으로 연결됐다.

“술도 조금 마셔보고, 음악에도 미쳐보고, 춤도 추어보고, 몸을 망가트리기도 하면서 저를 파괴했어요. 제게 일어나는 모든 일의 원흉으로 저 자신을 지목했고 제게 벌을 가한거죠. 그러다 30대 초반이 되면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나와야 되겠다고 결심하면서 작업도 하게 됐어요.”

유유진의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얼굴이 등장한다. 무리를 지어 등장하기도 하고 가면의 형태로 목도되기도 한다. 입속에도 얼굴이 있고, 눈 속에도 얼굴이 있고, 귀 속에도 얼굴이 있다. 얼굴이 화폭을 장악하고 있다. 이들 얼굴들은 찌질하거나 우울하고 형태도 제작각이다. 하지만 한결 같이 유유진으로 귀결된다. 일종의 자화상인 셈.

“내 안에 착한 나도 있고, 나쁜 나도 있고, 웃고 있는 나도 있고, 울고 있는 나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얼굴들은 다양한 내 상처의 흔적이며, 치유의 행위죠. 심지어 욕설의 자음만 딴 ‘ㅅ’‘ㅂ’‘ㄴ’도 얼굴들 사이에 숨은 그림처럼 숨겨놨어요. 작품 속에 응어리를 녹여내고 있다고 할까요?”

상처없는 인생은 없다. 어떻게 승화하느냐의 문제다. 상처를 독특한 미학으로 풀어낸 유유진의 작품은 반향을 불러오고 있다. 단체전에 심심찮게 불려다니다 결국 개인전까지 초대됐다. 이만하면 상처가 약이 된다는 말은 진리다. 적어도 유유진에게는…. 010-3811-1229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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