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무엇이든 누구이든
기다린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아직은 텅 빈 그릇 같은 것
허공의 테두리 안에 그리는 그림 같은 것이지만
그 안엔
믿음의 뿌리가 내려 있고
겸양의 줄기가 뻗어 있고
관용의 이파리들 어우러져 있고
아픔의 씨앗, 인내의 쌉쌀한 향기가 서려 있네
하늘 높이 날아간 연처럼
설령 그 기다림을
바람에게 주어 버렸다 해도
목숨 다한 기다림이라면 그것만으로
얼마나 슬기로운 것인가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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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 출생.『현대문학』추천(1967)을 통해 등단. 현대문학상, 현대시학상, 조연현문학상 등 수상. 이 시인의 일반적 작품 경향은 삶의 진정한 양식에 대한 각성을 표출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시에서 보듯 기다림은 누구에게나 아름다움 이상의 자기 구원이랄 수 있다. 우리는 오늘보다 내일에 대한 믿음 · 관용인 동시에 `아픔의 씨앗’일 수도 있다. 비록 `하늘 높이 날아간 연처럼’ 돌아올 리 없는 기다림일지라도, 기다림은 오늘의 각박한 생의 또 다른 여유가 아니던가.
이일기(시인 · 계간 `문학예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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