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백 가지 꽃으로 술을 담그면
<대구논단> 백 가지 꽃으로 술을 담그면
  • 승인 2009.12.0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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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 교육학박사)

중학교 때로 기억되는데 `왕자는 불행하다. 왕자밖에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을 읽고 고개를 갸웃거린 적 있었다.

당시에는 그 말이 좀처럼 가슴에 다가오지 않았다. `왕자라면 무엇이나 할 수 있을 텐데 무엇이 불행하단 말인가?’라는 선입관이 너무 강하게 다음 생각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생각은 서서히 바뀌어가기 시작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의 편협함이 몹시 부끄러워진다.

역시 중학교 시절 웃어른들로부터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한 가지 재료로 지은 약은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데, 이 역시 처음에는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인삼, 녹용 등 흔히 좋은 약으로 알려진 이 약을 한 가지만 먹었을 때에는 왜 위험하다는 말인가? 그러나 이 이야기도 그 후에 점차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최근 조 슈워츠라는 서양 사람이 `식품진단서’라는 책을 낸 모양인데, 서평을 읽어보니 우리 옛 어른들의 생각과 꼭 같았다. 이 책의 요지는 `완벽한 음식은 없다. 다만 균형이 있을 뿐이다.’라는 것으로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누구는 혈액 순환에 좋다며 오메가 지방산이 풍부한 생선을 많이 먹으라고 권하는데 누구는 수은 같은 유해 물질이 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생선 섭취를 줄이라고 말한다. 특히 해저에서 퇴적물을 가까이할 가능성이 있는 생선은 더욱 많이 경계해야 한다고 한다.

콩도, 우유도, 커피도 먹으라는 사람이 있고 먹지 말라는 사람이 있다. 각기 사람의 체질에 다라 다르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살아가는 데에 필수적인 음식에 대해 이처럼 상반된 정보가 쏟아지고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에 대한 조 슈워츠의 결론은 우리의 조상들이 이미 내린 결론과 다르지 않다.

단번에 몸을 좋게 하거나 수명을 늘리는 기적의 식품은 없고 균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몸이 필요로 하면 그 음식을 찾게 된다고 한다. 인체의 구조가 복잡하고, 인체를 구성하는 분자적 요소가 다양하며, 음식 역시 화학적으로 매우 복잡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두 종류의 식품으로 몸을 완벽하게 좋게 하기가 어려운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특정 음식에 대한 맹신도 공포도 금물이며 중요한 것은 식단의 전반적인 균형이라고 보았다.

일찍이 우리 조상들도 음식을 양(量)으로 먹지 말고 가짓수로 먹으라고 하였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한 가지만 먹으면 부족한 성분이 있기 마련이지만 수(數)를 다양하게 먹으면 음식마다 지닌 미량 성분이 우리 몸을 지켜준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원리에 의해 우리의 조상들은 `백 가지 약 중에서 으뜸(百藥之長)’이라는 술을 담글 때에도 이미 한 가지 재료만으로 담그지 않고 백 종류의 꽃을 섞어 넣은 백화주(百花酒)나, 또 백 가지 풀을 말려 넣은 백초주(百草酒)를 담그고 하였던 것이다.

꽃이나 풀이 백 가지라면 그 중에는 독이 든 것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온 산천에 독초와 독초 아닌 것이 서로 어울려 살아가면서 땅의 기운을 이어가듯이 약(藥)도 여러 가지 풀과 꽃들이 어울리면 신의 힘에 버금가는 절대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은 굳이 음식과 약을 구분하지 않았다. 식약동원(食藥同源)이라 하여 음식이나 약은 본래 그 뿌리가 하나라고 보았으며, `약보보다는 식보’라고 하여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이 곧 약을 먹는 것보다 더 낫다고 보았던 것이다.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한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모두 그 어떤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간다. 모든 식품이 서로 어울려 그 유익함을 더해가듯이 사람들도 그 사회를 위해 공헌하면서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나로 하여금 이 사회가 더욱 아름다워지기를 기대하며 나의 모습과 빛깔이 내가 속한 사회에서 줄기로 또한 꽃으로 기여할 바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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