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향기
사람의 향기
  • 승인 2017.05.30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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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청 부국장
수은주가 한껏 기지개를 켜니 한낮 기온이 연일 정신없이 치솟는다. 여름의 문은 아직 빗장을 열 생각도 않는데 폭염은 어느 틈새로 이리 급작스레 다가왔을까. 이글거리는 땡볕에는 도리가 없다. 신천 둔치에는 오후 2시 정도를 기준으로 산책하는 시민들까지 뜸해진다.

시민들의 건강지킴이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 신천 둔치공원. 잘 가꿔진 이곳에는 운동이나 산책을 하는 이들로 늘 붐빈다. 자세히 살펴보면 몇몇 노숙자도 신천을 보금자리로 고단한 삶의 둥지를 튼다.

지난주 목요일의 일이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둔치 상류쪽 교량과 교량 사이 나무그늘로 이뤄진 벤치들 중 한 곳에 노숙인 한명이 무료히 앉아있었다. 아니, 반은 기대어 누운 자세로 앉아있었다. 봉두난발의 쑥대머리에 덥수룩하니 함부로 헝클어진 긴 수염, 퀭한 눈에 오랫동안 씻지 않아 땟국물이 번질번질한 누더기 옷을 켜켜이 두르고 있어 한 눈에 척 봐도 오래 노숙생활을 해온 사람이다.

그때였다. 조그마한 낡은 자전거를 탄 한 노인이 그 벤치 곁에 자전거를 세웠다. 핸들엔 하얀색 비닐봉지가 매달려 있었다. 노인이라기보다는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장년층의 동네 아저씨 같아보였다. 자전거에서 내린 그는 아주 익숙하게 핸들에 묶어온 비닐을 풀어 벤치에 앉아있는 그 노숙자에게 건넸다. 그 둘은 비닐봉지를 주거니받거니 하며 몇 마디의 말을 나누더니 이윽고는 헤어졌다.

역시 자전거를 타고 있던 나는 작은 자전거를 타고 둔치를 빠져나가고 있는 그를 쫒아갔다. 100여 미터나 갔을까.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나는 그에게 자전거를 탄 채로 나란히 달리면서 “좀 전에 그 사람, 아는 사람이세요?”라고 불쑥 물었다.

그는 싱긋이 웃었다. “아뇨, 모르는 사람이에요” “아, 그러세요? 아까 멀리서 지켜봤는데,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혹시 그 비닐봉지에는 뭐가 들어있었나요?” 나란히 자전거로 달리면서 그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먹을 거예요. 따뜻한 밥하고, 뭐 그런거요”

이것저것 묻고 나니 그 벤치에 늘 앉아있는 그 노숙자에게 오래전부터 매주 목요일 점심때면 그렇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혹시 그것을 건네받는 그 사람이 부담스러워 할까봐 이것저것 많은 말은 건네지 않고 그냥 그렇게 하고 있는데, ‘이젠 목요일이 기다려진다’고 했다. 그렇게 잔주름이 짙은 눈웃음을 한 번 짖고는 그는 저 쪽길로 자전거를 몰고 갔다. 다시 그 벤치로 돌아가니 그 노숙자가 비닐봉지에서 우유팩 하나부터 꺼내 열고 있었다. 그에게 그 봉지는 몹시 소중해 보였고, 만일 봉지 안이 전부 먹을 것으로 채워져 있다면 양도 제법 되어보였다. 갑자기 폭염보다 더 뜨거운 ‘사람의 향기’가 어디에선가 부터 아다지오adagio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자신이 한 착한 일을 마음 속 비밀로 간직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사람을 볼 때면 참 훈훈한 감정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토록 따뜻한 감동을 준 그는 일생 전체를 펼쳐놓았을 때 과연 이토록 선한 일만 했을까. 요즘 진행되고 있는 청문회를 지켜보다 보면 참 요지경이란 생각이 든다. 대통령이 고위공직자 5대 비리를 저지른 사람은 중용을 하지 않기로 선을 그은 마당에 총리 후보자가 그 5대 비리 가운데 하나인 위장전입을 한 사실이 문제가 됐다. 그런데 어저께 대통령은 앞으로는 더 철저히 검증할 테니 이번은 ‘양해’해 달라고 했다. 원칙의 기준을 그어놓고 앞으론 원칙대로 할 테니 이번만 원칙을 무너뜨려 달라는 것이다.

사실 청문회를 지켜보는 많은 국민들은 우리 청문회 시스템이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느낀다. ‘저렇게 속속들이 분해하고 털어버리면 먼지가 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건 그렇다. 한 사람의 일생 전체를 펼쳐놓고 현미경을 들이대고 분석해 본다면 본인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잘못들까지 줄줄이 엮여 나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청문회는 당사자가 그 직무를 수행할 자격이 있는지 정도를 잘 분별해 살피는 선이 적당한 것 아니냐는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

사실 살아있는 성인이나 좀체 보기가 쉽지 않은 청빈한 선비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 다음에야 흠결이 전혀 없는 사람이 있을 수는 없다. 흠집이 좀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잘 들춰보면 남이 하지 못한 훌륭한 일들을 드러내지 않고 더 많이 한 사람도 왕왕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개 인생 전체에서 경중에 차이가 있을 뿐 한두번의 범법행위는 저지르게 마련인데, 도덕적으로 거의 비슷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또 거의 비슷한 삶을 살아온 사람을 비판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래서 예수는 ‘죄 없는 자, 이 여자를 돌로 치라’고까지 했다.

이차에 정부는 인사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음을 국민들 앞에 사과하고 청문회 시스템 등을 현실에 맞게 고쳐나가자고 얘기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나라의 큰 재목으로 쓰일 수 있는 인사들 중에 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는 인사를 찾기 힘든 마당이다. 새로운 정부를 구성할 요직의 인사들에게서 사람의 향기를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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