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끄라기와 가시를 등에 지고 있다(芒刺在背)
까끄라기와 가시를 등에 지고 있다(芒刺在背)
  • 승인 2017.06.07 10: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동규 전 중리초등학교 교장
6월 5일은 24절기의 하나인 망종(芒種)이다. 망(芒)의 한자가 ‘까끄라기 망’이다. 까끄라기는 벼나 보리의 낟알 겉껍질에 붙은 껄끄러운 수염을 말한다.

망종(芒種)은 벼나 보리처럼 까끄라기가 있는 곡식들을 말한다. 또 망종 절기는 보리를 베고 모내기를 하기 좋은 계절이다. 요즘 가뭄이 들어서 곡식들이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 식물이 가뭄으로 타들어 가면 동물도 가뭄에 견디기 어렵고 사람 역시도 가뭄을 탄다. 자연의 섭리이다.

우리나라에는 보릿고개가 있었다. 보리는 아직 익지 않았고 먹을 양식은 다 떨어져 끼니를 걱정하던 시절이 있었다. 먹을 것이 없어 ‘보릿고개에 사람 죽는다.’는 속담까지 있었다.

필자가 어린 시절, 망종과 하지 사이에는 마당에다 멍석을 펴고 탈곡 된 곡식을 널었다. 집안 형편에 따라서 햇보리나 묵은 벼 따위를 널어 햇볕에 말렸다. 이것을 시골에선 ‘우케’라 했다.

그 당시에는 장맛비가 자주 내렸다. 들판에 일을 하러 나간 사이에 비가 쏟아지면 우케를 치우고 설거지를 해야 하는데 집안에 아무도 없으면 곡식은 물에 떠내려가기 일쑤였다. 우리 고장엔 옛날부터 ‘양반은 우케가 떠내려가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말이 전해내려 왔다. ‘논밭의 일은 머슴들이 하는 것이다. 양반은 굶거나 먹는 일에 일체 관심 없이 살아라.’는 생각이 단편적 인식이었다.

어느 여름날 나는 사랑방에서 낮잠이 잠깐 들었다. 갑자기 번개와 천둥소리에 눈을 떠보니 마당에 널어두었던 우케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 사이에 소나기가 내려서 마당에 널어뒀던 우케가 물 위에 둥둥 떴다. 부랴부랴 멍석을 반쪽씩 덮고 물위에 뜬 낟알들을 박 바가지로 쓸어 담아 보았지만 힘이 부족했다. 비를 쫄딱 맞고 들에서 돌아오신 어른들이 황급히 거들었지만 워낙 갑자기 내린 소낙비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어른들은 집 안에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고 들판에서 우케에 관한 일은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면구스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필자의 우케에 대한 기억이다.

‘양반은 우케가 떠내려가도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말은 자기합리화이다. 결코 좋은 핑계거리는 아니다. 우케로 말린 곡식은 절구나 디딜방아 연자매로 찧게 된다. 까끄라기 망종은 드디어 알곡식이 된다.

까끄라기도 쓸모가 있다. 쓸모가 없어 보잘것없이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소중하게 쓸 데가 있다. 쉽게 여름밤 마당의 모깃불로 쓰인다.

망자재배(芒刺在背)라는 말이 있다. ‘까끄라기와 가시를 등에 지고 있다.’는 뜻이다. 마음이 몹시 조마조마하고 불안하여 편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한나라의 선제는 18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선제가 왕위에 오르는 데는 4명의 황제를 모시고 충성한 대장군 곽광의 힘이 워낙 컸다. 자연스레 선제는 대장군 곽광을 두려워하게 됐다. 그래서 대장군 곽광 때문에 선제가 가진 생각은 항상 등 뒤에 가시를 지고 살아가는 것처럼 무서웠다. 이것이 망자재배(芒刺在背)의 유래이다.

대장군 곽광이 죽고 선제는 자신의 뜻에 따라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선제는 한나라의 어진임금으로 숭앙받았다. 이와 같이 망자재배는 뒤에 권세 있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뜻으로 쓰였다. 또 무슨 일을 할 때 반드시 주위의 눈치를 살펴야하는 경우에도 쓰였다. 요즘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할 일은 많은데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불안하여 편치 않은듯하다. 공부하는 학생들도 변화될 앞날에 조바심이 생길듯하다.

‘까끄라기와 가시를 등에 지고 있다.’는 눈치를 보아야 하기 때문이리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