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을 보며 상상력 키우기 <꽃에서 나온 코끼리>
사물을 보며 상상력 키우기 <꽃에서 나온 코끼리>
  • 승인 2017.09.1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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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경
하브루타 도서관 관장
하늘이 맑다 가을이다 / 하늘이 높다 가을이다 / 하늘이 멀다 가을이다 / 하늘이 깊다 가을이다. 문삼석 시인의 시 ‘가을이다’의 전문이다. 요즘 눈을 들어 보면 맑고, 높고, 멀고, 깊은 하늘을 자주 만난다. 코발트빛 하늘에 새털구름, 뭉게구름이 멋지게 흩어졌다 모였다, 시시각각 다른 형태를 보여주어 가을이 돌아왔음을 실감나게 한다. 단풍이 시작되기 전 이 시기, 나무백일홍이 끝까지 빨간 레이스 꽃잎을 흔들고 있고 코스모스와 나리과 꽃들이 군데군데 군락을 이루어 장관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환경에 산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계절이 지나가는 무렵이면 항상 절실히 느끼게 된다.

무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실내를 찾느라 쫓기듯 발걸음이 바빴다면, 가을은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느긋하게 만든다. 시원해진 바람도 느끼고 하늘, 나무, 꽃, 새도 둘러보게 하고 또 좌판에서 만나는 여러 풍성한 과일과 채소들 앞에 걸음을 멈추게 한다. 아이들은 이 계절 무엇을 만나고 느낄까? 도서출판 ‘책읽는 곰’에서 펴낸 작가 황K의 <꽃 속에서 나온 코끼리>라는 그림책이 있다. 그림 속 맑은 하늘로 보아 가을이 느껴지는데 소년이 주인공이다. 소년은 집으로 가는 길에 산들바람을 만나고 또 처음 보는 꽃을 만나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그리고 꽃을 살펴보다가 기다란 수술이 ‘상아’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 순간 수술이 움직이면서 꽃 속에서 무언가가 살금살금 걸어 나온다. 조그만 코끼리다.

손바닥 안에 폭 싸이고, 필통 속에 들어가는 코끼리가 있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놀랍고 즐거운 일인가. 이것이 대수롭지도 않고, 말 같지도 않다고 생각 한다면, 현실에 눌려 감수성과 상상력이 사라진 게 분명하다. 어쨌든 그 코끼리가 기다란 코로 풀을 돌돌 말아 입에 쏙 넣는다. 민들레도 먹고, 엉겅퀴도 먹고, 강아지풀도 먹는다. 작은 입으로 오물오물 잘도 먹는다. 소년은 내내 코끼리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소년은 코끼리와 여러 놀이를 하며 즐겁다. 하지만 코끼리가 자기가 있던 곳으로 가고 싶을 거라 생각하며 다시 꽃으로 돌려보내게 된다. “내 이름은 한별이야. 너는 …… 꽃에서 나왔으니까 꽃끼리라고 부를게.” 꽃으로 돌아간 코끼리는 이내 사라지고 만다. 소년은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간다.

그림책은 거의가 판타지라고 해도 좋다. 동물의 의인화를 비롯하여 생활그림책이라 해도 낮은 판타지를 사용한 경우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며 판타지 놀이에 빠진 존 버닝햄의 <지각대장 존>도 떠오르고 얼마 전 연재한 마리 도를레앙의 <딴 생각중>도 생각이 난다. 판타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과 판타지 공간을 넘나드는 아이들이 소통되지 못하는 장면들을 보면서 비로소 우리 어른들은 잃어버린 판타지 세계를 떠올리게 된다. 아이들에게 판타지 공간은 어린 생명이 받은 상처를 회복 시켜주는 쉼터이다. 그곳에는 내가 주인공이고 내 의지대로 이야기를 만들고 이끌어 갈수 있다. 현실의 억압과 상처와 결핍을 판타지에서 회복하고 스스로 문제해결력을 키우며 점점 성장하여 어른이 된다.

시계는 항상 일정한 속도로 돌아가지만 세상의 시계는 훨씬 빨라진 게 확실하다. 인간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예전에 비해 더 빠르고, 더 가볍고, 더 정확해지고, 더 간단해졌는데 불구하고 여유없이 허둥지둥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이다. 그럴수록 중요한 뭔가를 잃고 산다는 게 느껴지는데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지키고자 한단다. 그것이 공장에서 만들어진 물건이라 할지라도 자기 장소에서 자기의 소임이 주어질 때 하나의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 의미를 찾아가며 소통하고 교감하며 살아가는 일, 어른이 키울 수 있는 상상력이자 더 넓은 자유를 얻는 방법이 아닐까하고 횡설수설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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