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물러날 곳 없는 乙과 乙의 웃픈 생존기
더 이상 물러날 곳 없는 乙과 乙의 웃픈 생존기
  • 윤주민
  • 승인 2017.11.15 1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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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코미디 영화 ‘7호실’
DVD방을 팔야야만 하는 두식
빚더미에 고통받는 청년 태정
7호실에 비밀 숨겨둔 채 실랑이
이기주의·물질 만능주의 등
사회 문제점 고스란히 드러내
메시지 전달 위한 설정 무리수
신하균
영화 ‘7호실’ 스틸 컷.


두식(신하균)의 삶은 고달프다. 밤에는 대리운전 기사를 하고, 낮에는 DVD방을 운영하며 고단한 삶을 연명 중이다.

DVD방으로 한 몫 챙긴 지인의 말이 떠올라 자신도 부귀영화를 누리려 가게를 차렸지만 벌써 10년 전 이야기, 이미 한물간 사업이다. 서울 압구정동에 전 재산을 쏟아 부어 차린 DVD방, 애석하게도 손님의 발길은 끊긴 지 오래다. 밀린 월세, 아르바이트생의 월급, 누나에게 빌린 돈 등 두식의 서글픈 삶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두식의 가게에서 일하는 태정(도경수)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대학교 등록금을 내기 위해 대부업을 끌어다 썼지만 두식에게 제대로 된 월급을 받지 못해 이자만 늘어가고 있는 상황.

그러던 어느 날 두식은 힘든 여건 속에서도 중국인 아르바이트생 한욱(김동영)을 고용한다. 체계적인 운영으로 가게를 살린 뒤 자신의 DVD방을 사려는 호구(?)매입자를 기다리기 위해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제가 일했던 곳은 항상 다 잘됐어요”라는 한욱의 말처럼 DVD방에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하고, 가게를 인수하려는 매입자까지 나타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한욱이 예기치 못한 사고로 죽게 되고 두식의 계획은 얽히고설킨 실타래처럼 꼬인다. 태정도 빚을 갚기 위해 어둠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가 발목을 잡히고 만다. 두식과 태정, 각자의 비밀을 ‘7호실’에 숨겨놓았기 때문이다.

매일 활짝 열어 놓던 ‘7호실’은 서로의 ‘치부’를 숨겨놓은 비밀스러운 방으로 뒤바뀌고, 생존을 위한 두 사람의 기막힌 실랑이가 시작된다.

영화 ‘7호실’은 독립영화 ‘10분’으로 기대를 모은 이용승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이다. 전작에서 시간에 제한을 뒀다면 이번 작품은 낙후된 DVD방으로 한정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영화를 관람하기에 감독의 세계관은 다소 어려워 보일 수 있다. 상업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전하는 메시지가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이 흔히 겪을 수 있을 법한 이야기들, 을(乙)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보다 더 나은 인생을 위해 몸부림치는 두식과 태정. 그렇게 영화는 먹고살기 급급한 이 시대의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블랙코미디’라는 소재를 활용한 덕분에 과하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다.

두식과 태정, 한욱의 관계를 비롯해 부동산 소장과 건물주 등 영화 속 등장인물은 모두 ‘돈’으로 얽힌 사이다.

‘돈’ 때문에 죽은 사람을 숨기고, 마약을 숨기는 두 남자. 또 허영심을 부추겨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 영화는 한정적인 공간, 그곳 사람들의 관계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맹점을 꼬집는다. 간과해서 안 될, 무심코 넘어가서도 안 되는 현시대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다 두식과 한욱의 관계는 숱하게 언론을 통해 보도됐던 한국인 고용주와 이주노동자의 문제점을 연상케 한다.

두식과 태정, 한욱의 회식자리에서 벌어진 싸움, 태정은 한심하다는 듯 사태를 관망한다. 오히려 한국 생활 3년차 중국인 한욱만 두식을 돕는다. ‘참견하지 않는 게 이롭다’는 말이 일상이 돼버린 우리들의 삶을 우회적으로 깎아내리고 있는 셈이다.

싸움이 끝난 뒤 두식에게 건네 받은 2만원 차비, 한욱은 다음 날 점심 거리로 ‘햄버거 세트’를 사온다. 그런데 그 날 뜻밖의 사고로 한욱이 죽지만, 두식은 자신의 가게를 팔기 위해 이를 모른 체하고 만다.

아마 감독은 이 같은 장면을 보여주면서 한국인 고용주들의 이기적이고도 악랄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순수한 한욱의 마음을 알면서도 끝내 그의 시신을 숨기는 두식의 모습은 안타깝지만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이기에 서글플 수밖에.

태정과 한욱을 고용하고 있는 두식이지만 그도 여기저기 휘둘리기 바쁘다. 부동산 소장과 건물주의 얕은 입김에도 쉽게 쓰러진다. 물고 물리는 관계. 권리금을 위해 그리고 학자금을 갚기 위한 이들의 사투는 인정하긴 싫지만 씁쓸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웃기지만 슬픈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평은 갈릴 수 있다. 감독이 주는 메시지와 달리 상업영화가 추구하는 이른바 ‘큰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감독이 품고 있는 메시지는 오롯이 관객이 이해해야 할 몫이다.

자극적인 느낌도 있다. 한욱의 ‘죽음’을 덮어야만 하는 두식, 그리고 빚 때문에 마약을 전달할 수밖에 없는 태정의 극한 상황이 그 예다. 무리수를 둔 느낌이라고 할까. 한욱의 희생, 즉 성실하고 순수한 외국인 노동자의 죽음을 신경도 쓰지 않는 경찰들의 태도와 또 대부분의 한국 대학생을 대변하는 것 마냥 그리고 있는 태정의 삶이 그렇다는 것이다.

명쾌한 해답을 던져주지 않은 채 스크린은 어두워진다. 대포차를 타고 떠나는 두식, 그 속에서 환영(幻影)처럼 보인 한욱의 모습은 이 영화가 ‘블랙코미디’라는 것을 한 번 더 각인시킨다.

윤주민기자 yjm@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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