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보고 싶은 얼굴’ 2009 송년모임
<대구논단>`보고 싶은 얼굴’ 2009 송년모임
  • 승인 2009.12.24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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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열 (객원 대기자)

두툼했던 달력이 모두 떨어져 나가고 달랑 한 장밖에 남지 않았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 새가 생각난다. 창밖으로 보이는 나뭇가지에 매달렸던 수많은 잎들이 모두 떨어지고 오직 잎사귀 하나만 붙어있어 언제 떨어질까 눈여겨보는 그 안타까움이 우리의 가슴을 치는 작품이다. 풍성하고 푸르렀던 잎들이 누렇고 빨갛게 물들기 시작하면 단풍의 아름다움에 취하고 마는데 어느덧 낙엽이 되어 발끝에 밟히고 있다.

인간의 삶도 저 나무와 무엇이 다르랴. 씨를 뿌리면 싹이 돋아나고 묘목으로 자라 열심히 가꾼 덕분에 거목으로 커서 그림자를 드려주며 잎과 열매를 맺는다. 사람 역시 어미 뱃속에서 열 달 동안 자라다가 세상 빛을 보면 젖을 빨리고 기저귀를 갈아주면서 정성으로 키운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운동하며 헌헌장부나 절세미인으로 성장하여 국가와 미래를 위해서 일하게 된다.

잎과 열매와 뿌리까지 인간을 위해서 아낌없이 내놓는 나무처럼 사람은 배움과 기술 그리고 봉사를 통해서 부모와 사회로부터 받은 은혜를 보답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수명이 다하면 또 다른 세상으로 떠난다. 이처럼 순환과 윤회의 정해진 법칙에 따를 수밖에 없는 인생인데 살아가는 동안에는 어찌 그렇게 모질고 각박할까. 그 중에서도 정치세계에서 함께 일해 왔던 동지들의 삶은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부침해 왔다.

특히 4.19혁명이후 군사정권 30년 동안 야당을 했던 사람들의 감회는 남다르다. 그들에게는 민주화라는 공통의 목표가 있었다. 영구집권을 꾀했던 자유당을 무너뜨린 원력(願力)은 오직 독재를 물리쳐야 된다는 당장의 기원에 있었다. 4.19혁명의 주체세력은 학생이었지만 정권은 민주당이 차지했다. 무능 허약한 장면정권은 학생들이 안겨준 정권마저 유지하지 못하고 박정희의 군사쿠데타에 어이없이 무너졌다.

군사정권은 민간인의 옷으로 갈아입긴 했지만 장장 30년 동안 이어졌다. 그 사이 10월 유신 친위쿠데타와 10.26이후 신군부쿠데타로 이어지면서 광주민주항쟁을 불러오기도 했다. 이로 인하여 야당은 지리멸렬하고 분파싸움으로 스스로 약화되었다. 고려시대에나 있었던 지역감정의 불길은 여야 간, 야야 간에 가릴 것 없이 전가의 보도로 사용되었다. 정치인들의 가장 더러운 이면사의 노출이다.

그러면서도 6월 항쟁의 거대한 시민운동을 성공시킨 것은 야당정치인들의 공로가 결코 아니다. 20년이 넘게 계속되는 군사정권의 몰염치한 작태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시민의 궐기였다. 6월 항쟁이 전 국민의 궐기로 성공한 것은 4월 혁명과 맥을 같이하며 그 열매를 야당이 차지한 것도 비슷하다. 민주화운동의 양대지주(兩大支柱)가 김영삼 김대중의 차지가 된 연유다. 거기에 김종필이 빌붙은 형국이다.

3김은 공교롭게도 영남과 호남 충청을 대표하며 지역감정을 부추겨 자기 이익 챙기기에 골몰한다. 불쌍한 건 그 밑에서 한 자리 해먹겠다고 아유구용을 다하며 따라다니는 졸개들이다. 문전옥답 팔아 바쳐 벼슬을 사던 원납전처럼 공천헌금으로 3김만 배가 불렀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러 김영삼과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었다. 그 밑에서 알랑거리던 무수한 인사들이 떡 고물을 챙겼다.

노무현이 등장하여 386세상이 되고 자살소동을 일으키며 허망했던 인간 군상들이 서서히 사라져간다. 이러한 배신과 이반(離反)의 세계에서도 군사정권과의 3당 야합을 거부했던 이기택과 양김씨의 대통령후보 단일화를 위해서 분골쇄신한 김상현은 이제 원로정치인의 반열에 올라 현실정치의 일선에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해마다 주머니를 털어 마지막 달력 한 장이 찬바람에 떨고 있을 때면 과거의 동지들을 불러 모은다.

이름하여 `보고 싶은 얼굴’이다. 이기택은 이모임을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이고 자연스런 모임으로 정의한다. 특히 산업화세력과 단절하지 않은 민주화세력이 단결하고 화합하며 친목과 웃음을 되살려내는 정다움이 깃들어있는 모임으로 평가한다. 김상현은 양김의 단일화를 이뤄내지 못했던 아쉬움을 토로하며 끝없는 인간의 욕심 앞에 허약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개탄한다.

12월17일 모인 500여명의 동지들은 최고원로 김영삼 전대통령에게 기립박수를 보낸다. 그는 세종시 문제 등 현안을 거론하며 전 정권의 잘못된 선택을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김덕룡 이부영 정대철 한광옥 등이 등단했지만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정치적 발언은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의 표현으로 봐주고 싶다. 세모에 만난 반가운 얼굴들에게는 따뜻한 덕담 한 마디가 더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공주출신 이희원의 매끄러운 사회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옛 얼굴들의 주름살을 펴주는 역할을 한 것은 천만다행이다. 세 시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내년에도 다시 만나자는 다짐이 너무나 아쉽고 아름다웠다. 새 해에는 모두 건강하고 보람찬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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