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으로 가는 길
안전으로 가는 길
  • 승인 2017.11.28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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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조 수필가
단풍이 절정에 달하고, 거리에는 낙엽이 켜켜이 쌓이면서 짙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다.

며칠 전, 팔공산 둘레의 작은 암자를 찾아 나무에 관심이 많은 20여명의 중년남녀가 여행을 다녀왔다. 목적지로 선정된 암자는 입구까지 승용차가 들어갈 정도로 길이 반듯해 더욱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을 하게 되었다.

산의 초입에서 발을 내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갈림길의 이정표에는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역사적 인물의 태실(胎室)로 가는 안내표지가 있었다. 예정에 없던 길이었기에, 선택의 여지는 있었다. 그러나 문화재를 찾아 가는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모두 같은 방향을 택했다. 거리는 8백 미터, 좁다란 길목은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산을 오르는 길의 방향이 꺾일 때마다 탄식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깎아지른 듯 가파른 경사도 문제였지만, 흙이 바짝 마른데다 낙엽이 쌓여 오르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계단 등의 도움 시설도 없었으며, 스틱을 준비한 사람도 몇 되지 않았다. 이 길로 다시 돌아간다면 낭패라는 걱정과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 따뜻한 위로처럼 들려왔다.

태실에 도착하여, 땀을 닦으며 저마다 준비한 간식거리로 목을 축이거나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왔던 길로 돌아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허리를 구부려가며 겨우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가기는 어렵다며, 조금 돌아가더라도 다른 길을 찾아보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나 몇 발자국도 가지 못해 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방향을 되돌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곤란한 지경이 되고 말았다.

누군가 앞장 서며, 먼 길이 아니니 천천히 내려가 보자는 말을 했다. 아무래도 이곳이 계곡이 지나는 길인 것 같다며, 차라리 더 나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더해졌다. 길이 아닌 길에는 크고 작은 돌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그 위를 층층으로 낙엽이 뒤덮여 있었다. 몇 개의 스틱과 긴 나뭇가지를 나눠들고, 바닥을 확인한 다음 조심스레 발을 디뎌야할 만큼 온 몸은 긴장으로 굳어졌다.

산이 높지 않아 만만하게 보았던 것이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길을 찾아 간신히 내려왔을 때는 다리가 후들거렸음에도, 추억의 가시밭길이었다며 한 목소리로 즐거워했다. ‘눈썰매는 여러 번 타보았지만, 낙엽으로 썰매를 타기는 처음’이라는 우스갯소리로 아찔했던 순간을 대신하기도 했다.

날씨는 맑고, 산행거리가 짧았으며, 일행이 많았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치거나 상처를 입은 일행이 없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처음에 예상했던 비교적 평탄하고 잘 닦여진 길을 따라 어려움 없이 걷는 하이킹(hiking)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다소 어려움이 따르는 걷기인 트래킹(trekking)을 넘어 결과적으로 두 손까지 사용해야 하는 등산인 클라이밍(climbing)을 하게 된 것이었다.

안전으로 가는 길은, 기본을 지키는 것과 철저한 준비만이 최선이라는 교훈을 되새기는 기회였다.

한두 명이 경험이 많고, 산을 잘 안다고 해도 즉흥적으로 코스를 바꾸는 것은 지양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거나 반드시 누군가는 아는 길을 가야한다. 모르는 길을 더구나 길이 아닌 길을 걷는다는 것은, 불씨를 들고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만약 어두운 산길에서 기상변화를 마주했거나 일행마저 적었다면 결코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면 지금도 눈앞이 아득해진다.

3년 전, 판교에서 공연 감상을 위해 무심코 환풍구 덮개 위에 올라섰다가 무게를 견디지 못한 덮개가 무너져 많은 사상자를 냈던 참사를 상기하고 싶지도 않다. 그에 비해 최근 포항지역의 지진 발생 때 진원지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에서 건물의 심한 파손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사고 없이 신속하게 대피를 할 수 있었던 것이 수차례 연습을 반복한 결과였다니, 비교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별 것 아니라고 여길 수 있는 작은 문제를 소홀히 했다가 대형사고로 이어진 어이없는 사례를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 이왕 내친걸음 한 발자국이라도 더 걷고 하나라도 더 가지려는 욕심보다, 조금 느리게 작은 아쉬움을 안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삶을 풍요롭게 하는 맛깔스러운 조미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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