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높이 보이는 내 마음의 ‘미륵보살’
저 높이 보이는 내 마음의 ‘미륵보살’
  • 황인옥
  • 승인 2018.01.29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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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작가 기쿠치 다카시 ‘애매한 기억’展… 봉산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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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쿠치 다카시 작. 봉산문화회관 제공

인간이 영생할 수 없듯, 현재 또한 영원히 현재일 수 없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순식간에 현재는 과거로 전락한다. 시간 앞에 장사 없는 이유다. 하지만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다.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다. 시공간이 엄격한 3차원은 불가능하지만 시공간을 초월하는 4차원이면 가능해진다. 바로 기억이다. 과거가 기억으로 재생되는 한 영원히 현재진행형이 된다. 이때 모든 사건이나 인물이 기억되는 것은 아니어서, 기억하는 자 나름의 기준이 압축된 필터를 거쳐야 한다.

일본 작가 기쿠치 다카시가 삶의 가치, 나아가 예술의 가치로 바라보는 지점은 여기다. ‘기억’. 그는 역사 속에서 상실됐거나 제거됐던 기억에 주목하고 자신과 우리의 애미한 기억을 재각인하며 시각화한다. “대개 재각인 되는 기억은 자연 혹은 생명, 평화, 기쁨, 치유와 그 관계에 관한 창조적 기억들이죠.”

봉산문화회관 기획 기쿠치 다카시의 ‘애미한 기억’전이 4월1일까지 4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나무 조각’으로 자연의 근원적 에너지를 탐구하며 공감각을 확장하는 이전작업과 ‘기억’을 매개로 인간과 우주의 근원을 탐구하는 최근작을 동시에 소개하고 있다.

특히 ‘기억’을 모티브로 한 최근 작품이 눈길을 끈다. 범종과 미륵, 그리고 범자를 시각화 한 작품들이 ‘기억’이라는 프레임으로 묶였다. 전시장 한 켠에 미륵을 뜻하는 범자(梵字·고대 인도에서 범어, 즉 산스크리트 어를 적는 데 쓰던 표음 문자) 576만개를 점으로 프린터 한 폭 1m의 천을 종이접기 하듯 정교하게 접어서 3개의 벽면에 걸쳐 설치한 작품 ‘576 million dots’과 일본 나라시 동대사 절이 있는 실제 범종의 일부를 본떠 제작하고 소리를 채집해 시청작적으로 표현한 ‘소리의 오마주’가 설치돼 있다.

그리고 천장 바로 아래서 범자가 프린터 된 천과 종을 내려다보고 있는 황금색 작은 미륵보살반가사유상 ‘perfume’도 불교라는 재료로 조각됐다. 각기 다른 기억의 단편 세 개가 ‘애매한 기억’을 매개로 유기적으로 짜여있다.

“우리 뇌를 해부해도 어디에 기억이 저장됐는지 몰라요. 실제로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이죠. 그래서 애매한 기억이라고 명명했어요. 우리의 기억이 애매하듯 제 작품도 관람자에 따라 해석할 여지가 다양합니다. 각자의 상황으로 느껴주세요.”

그가 50세 되던 해의 기억을 떠올렸다. 인생의 반을 지나는 50세가 되던 해에 마음이 조급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에 대한 조급함이 엄습했고, 이제는 스스로 만족하는 작품을 해야 한다는 갈망도 커졌다. 그 시기 자연에서 인간과 우주의 근원으로 주제의 변화를 모색했다.

“불교는 종교적 접근과 거리가 멀어요. 본질을 포착하는 매개 장치에 국한되죠. 30대 시절에 절에서 불상 만드는 사람 밑에서 수련한 시기의 기억을 환원해 현재 저의 예술적 주제를 표현하는 매개로 삼은 것이죠.”

기억의 환원이다. 생명이 끝나지 않는 한, 시간이 흐르는 이상 현재는 기억으로 저장된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저장소는 풍성해진다. 기억이 계속해서 저장 되는 한, 환원할 재료 역시 다양해지며, 이는 곧 작품의 확장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그가 환원을 ‘성찰’과 ‘미래설계’ 등의 개념과 연관지었다.

“과거의 재인식은 지나온 발자욱을 되돌아보고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가 목적이죠. 이때 필요한 전제가 각성이죠. 그러면서 마음의 치유로까지 갈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죠.”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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