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당신이 화분을 키우는 이유는…정민제展, 현대백화점 갤러리 H
엄마, 당신이 화분을 키우는 이유는…정민제展, 현대백화점 갤러리 H
  • 황인옥
  • 승인 2018.02.22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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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 떠난 자식 대신 화분 키우며
제2의 인생 다시 찾는 듯 보였다”
낡은 천으로 식물 등 오브제 제작
가족에 헌신한 지나간 시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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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제 작 ‘그녀들의 인생 설계도’

어린시절 정민제의 어머니는 오래된 이불을 버리지 못했다. 이불보를 따로 모아 재활용하곤 했다. 엄밀히 말하면 자원 활용과 환경보호 차원의 개념 행동은 아니었다. 풍족하지 못한 시절의 절박한 생존전략의 일환이었다.

잊고 있던 어머니의 구제 패브릭이 정민제의 의식 위로 다시 올라온 것은 학부 시기다. 당시 미술의 주류가 페인팅이었지만 정민제는 패브릭과 바느질을 결합한 전혀 새로운 방식의 설치작업을 시도했다. 당연히 환영받지 못했고, 그 때문에 외로운 시기도 있았다.

“8남매 맏이로 시집 오신 어머니는 딸 둘을 내리 낳으셨어요. 남아선호 사상이 강했던 할머니의 따가운 시선과 차별은 피할 수 없었죠. 그런 한 서린 삶은 내 어머니의 것인 동시에, 그 시대 어머니들의 삶이었죠. 제가 여성이어서 작업을 시작하면서 여성들의 삶이 의식을 건드렸죠.”

초기에는 천에 풀을 바르고 그 위에 머리카락으로 평면을 구현했다. 머리카락은 일종의 주민등록번호표와 같은 인식표였다. 패턴이 아름다운 패브릭을 서문시장 등에서 구입해 사람 형상을 만들거나 한지로 고무신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작업도 진행했다. 인간의 개별성에 대한 통찰이 이 시기 작업의 주제였다.

이후 기성품 셔츠나 유니폼 등에 페인팅을 시도하며 지평을 넓혀갔다. 머리카락이 개별성의 상징이라면 유니폼은 보다 확장된 집단의 상징이었다.

“일탈을 꿈꾸었지만 일탈을 벗어나지 못하고 일상에서 뭔가를 계속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숨이 막혔어요. 그러면서도 일탈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못했죠. 당시의 내면 갈등이 작업의 자양분이 됐어요.”

정민제의 대표작이 패브릭을 바느질한 입체 화분이다. 화려한 화분 속에 싱그러운 식물들을 표현했다. 비록 생물은 아니었지만 시각적인 생명력은 생물에 뒤지지 않았다.

화분 작업의 직접적인 동인은 외할머니와 이모였다. 그녀들이 둥지에서 떠나간 자녀들 대신 애정을 쏟은 것이 식물기르기였다. 그녀들의 식물 기르기 재능은 거의 천부적이었다. 성장해서 떠나간 자식 대신이었으니 애지중지는 당연했다. 그러나 높은 애정지수에 반해 화분의 형색은 남루하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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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의 여성들에게 위무를 보내는 김민제 초대전이 현대백화점 갤러리 H에서 3월 12일까지 열린다.

“평생 자신을 위해 돈 한 번 써보지 않았던 그녀들에게 새 화분을 구입하는 것은 일종의 사치이자 죄의식이었어요. 깨진 그릇 아니면 버려진 깡통이 화분이 됐죠. 그녀들의 화분을 작업하면서 구제옷을 활용할 수 밖에 없었어요. 깨진 그릇과 구제옷은 대상만 다를뿐 맥락은 같았으니까요.”

최근 보편 여성에서 작가 자신으로 돌아왔다. 입체적인 바느질로 표현했던 화분 속 식물을 벽면 드로잉으로 옮긴 것. 작가 자신의 얼굴과 화분 없는 식물들을 테이핑 드로잉으로 구현했다. 보편여성에서 작가 자신으로으로 대상의 변화를 꾀했지만 ‘여성 위무’라는 주제는 동일하다.

“시대를 초월한 어머니들의 삶은 모두 위대했고, 모두 슬펐어요.”

벽면 드로잉은 자화상인 동시에 ‘공간에 대한 염원’이기도 하다. 그녀는 개인 작업실을 갖지 못하고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떠돌고 있다. 그때마다 열정적으로 작품을 하지만 작품을 보관할 공간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 대안이 벽면 테이핑 드로잉이었다.

“팔려나가지 않고 쌓여있는 작품이 스트레스였어요. 자식 같은 작품이라 없앨 수도 없고, 보관도 마땅치 않고. 벽면 드로잉은 전시가 끝나면 사라지지만 영상이나 사진으로 남으니 그 대안이 될 수 있었죠.” 전시는 현대백화점 갤러리 H(대구 현대백화점 9층)에서 3월 12일까지. 053-245-3308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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