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사철 시내 중심가처럼 붐비는 전망 좋은 길
사시사철 시내 중심가처럼 붐비는 전망 좋은 길
  • 채광순
  • 승인 2018.03.01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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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도덕산 종주길
왕건 군사 숙영한 곳 ‘대왕재’
칠곡 택지지구 전경 발아래에
삼국시대 이용된 ‘군사적 요충지’
고려 광종 속병 낫게 한 도덕암
인천 이씨·능성 구씨 유적 곳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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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산 일출
도덕산 일출.


#팔달교~송림사

927년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를 침공하자 급박해진 신라는 왕건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왕건은 5천명의 정예병으로 급히 달려오지만 파군재 근처에서 거의 전멸하고, 대구지역에 수많은 왕건 유적지를 남긴다(동수전투). 왕건의 군사가 처음으로 팔공산 지역에 들어와 숙영한 곳을 대왕재라 부른다. 팔공산 주능선에서 대구시 동구 공산동과 칠곡군 동명면 기성리 사이에 있는 대왕재를 따라 흐르는 지묘천을 건너면 바로 도덕산이다. 폭이 좁지만 지묘천이라는 물을 건너니 산경표상으로 도덕산(660m)은 팔공산과는 다른 산줄기가 된다.

도덕산 종주길은 대구은행 연수원 뒤쪽으로 올라 도덕산 정상을 조망하고 완만한 산굽이를 따라 국우터널, 함지산, 팔거산성으로 이어져 팔달교 근처의 대백 인터빌 아파트에서 끝이 난다. 그러나 산꾼들은 대중교통이 더욱 편리한 팔달교 근처의 대백 인터빌 아파트를 출발하여 함지산, 국우터널을 지나 도덕암으로 내려오는 종주길을 더욱 선호한다. 도덕산 종주길은 북구청에서 조성하고 있는 <북구 순환 테마길(8개 코스, 총 103.6km)>과 일부구간 겹치기도 하지만 산악 자전거나 산악 오토바이 동호인들이 자주 찾는 길이고, 북구 구민들이 즐겨 찾는 트레킹 길이다. 특히 국우터널에서 313봉 구간에는 산악 오토바이 동호인들이 많이 다녀 산길이 움푹 패인 곳이 많다. 도덕산 종주길은 도덕산을 제외하면 해발 300m 정도의 완만하고 편안한 길이지만 전 구간에서 칠곡의 도남동, 국우동이나 남쪽의 연경동, 동변동, 서변동 등을 조망할 수 있다. 팔거산성이 있는 함지산 전망대는 경치가 좋아 칠곡 택지지구의 전경이 발아래 펼쳐진다. 종주길 전체는 팔달교~대백인터빌 아파트~팔거산성~함지산~조야재~망일봉~국우터널~313봉~도덕산~도덕암~송림사(혹은 대구은행 연수원)이고 총 20km, 7시간 정도의 걷기 길이다.

칠곡 경북대 병원역에서 출발하는 응용 코스는 도덕산 정상에서 안도덕 마을, 바깥도덕 마을의 산능선을 따라 응해산(518), 왕산(191), 지묘동으로 내려오는 14km인데, 팔공산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 산꾼들이 많이 찾는다. 도덕산 종주길과 응용 코스 주변의 구간별 거리와 명소는 다음 그림과 같다.

#도덕산 종주길 이야기

함지산(函芝山, 288m)은 함지를 엎어 놓은 것 같아서 방티산이라 불렀는데 한자어로 바뀌면서 함지산이 되었다. 함지산은 동쪽으로 전망이 좋아 정월 대보름에 달맞이 행사로 유명하고, 북구청에서는 신년이면 망일봉에서 해맞이 행사도 한다. 함지산 전망대는 높지 않지만 대구 시가지, 칠곡 택지지구, 금호강의 수려한 경치를 조망할 수 있다. 평평한 정상은 시야가 넓고 군사적인 활용 가치가 높아 삼국시대부터 테뫼식 팔거산성이 있었고, 조선시대에 가산산성이 축성되기 이전에는 대구 지역의 군사적인 요충지였다. 함지산 주변에는 삼국시대의 고분인 구암동 고분군 유적이 있어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수 있고, 망일봉에는 소나무 연리지(連理枝)가 있어 부부의 사랑이 더욱 굳건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함지산에서 망일봉 가는 길에는 조야재가 있는데, 옛날 도남동이나 국우동의 주민들이 조야동, 노곡동으로 넘던 길이다. 조야재는 접근이 쉬워 사시사철 사람들이 끊이지 않아 마치 시내 중심가처럼 붐빈다. 북구청에서 조성한 각종 운동시설이 있고, 커피를 파는 곳도 있다.

연경동(硏經洞)은 왕건의 군사가 지날 때 선비들의 경전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려 조심해서 지나갔다는 이야기에서 생겨난 지명이고, 도덕산은 연경동에 글 읽은 도덕군자들이 많이 살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덕군자들이 많이 살아가는 연경동에는 달성의 도동서원보다 3년 전에 창건된 대구 최초의 서원인 연경서원이 있었다. 퇴계의 제자인 매암 이숙량(1519~1592)과 전경창이 연경서원의 창건을 주도하여 대구지역 서원 중에서 최초로 세워졌다. 하지만 대구 유림(儒林)의 정신적인 뿌리라 할 수 있는 연경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어 아직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대구에 산재되어 있는 문중이 운영하는 문중서원은 모두 복원되었지만 대구유림의 성지이자 수서원인 연경서원의 복원은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옛 문헌에 의해 들연경 마을과 서원연경 마을 사이의 화암(畵巖) 근처에 연경서원 부지를 겨우 확보한 상태이다. 그 외에도 연경동에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우람하고, 서쪽의 명당에는 광해군의 태를 묻은 태봉이 있고, 연경동의 제법 긴 골짜기를 따라 도덕산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이 모이는 도덕지(道德池)와 연경지(硏經池)가 있다.

동화천 서쪽의 함지산 망일봉 아래에 위치한 서변동은 인천 이씨의 집성촌이다. 연산군의 폭정을 피해 대구에 정착한 인천 이씨는 지금도 무태, 서변동, 연경동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서변동에 있는 환성정(喚惺亭)과 서계서원(西溪書院)은 임진왜란 때 대구지역에서 의병장이었던 태암 이주(1556~1604)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이주는 낙재 서사원, 모당 손처눌, 곽재겸, 전응창, 이종문 등과 임진왜란 당시 의병 활동을 하던 대구 유림의 2세대이다. 칠곡은 일곱 개의 골짜기어서 칠곡이라 했다는 이야기와 옻골이 있어서 칠곡(漆谷)이라 했다는 지명 유래가 있다. 국우동은 아홉 개의 마을이 있어서 구우리가 국우동으로 바뀌었고, 도남동은 도덕산 남쪽에 위치한 마을이어서 도남동이라 부르고 역시 인천 이씨 집성촌이었다.

유적으로는 도남지 옆에 유화당(有華堂)과 남호정사(南湖精舍)가 있다. 동화천변과 동변동은 능성 구씨의 집성촌인데 송계당, 화수정, 표절사 등의 유적이 있다. 송계당(松溪堂)은 고려 말 두문동 72현 중의 한 분인 송은(松隱) 구홍과 그의 후손 계암(溪巖) 구회신의 충절을 기린 재실이다.

도덕산 정상 아래에 위치한 도덕암은 신라 눌지왕 대에 창건되었다지만 정확하지 않고, 고려 광종 19년(960)에 혜거국사가 칠성암(七星庵)을 중수했다는 사적이 있으니 천년이 훨씬 넘는 고찰이다. 나한 기도처로 알려진 도덕암에 주석하던 혜거국사를 왕사로 추대하려고 몇 번이나 청했지만 산문을 나오지 않아 왕이 직접 도덕암을 찾는다. 광종이 도덕암 대웅전 뒷편의 어정수(御井水)를 마시고 속병이 나았다는 기록이 있고, 어정수는 천년이 지난 지금도 잘 관리되고 있다. 도덕암에는 수령 800년의 모과나무가 자랑스럽고, 조선말에 그려진 몽계당 선의대사(夢溪堂 善誼大師)의 진영이 보관되어 있고, 발아래에 펼쳐지는 송림사와 동명저수지의 일몰 풍경이 특히 아름답다. 도덕산 종주길을 걸을 때 도덕암 어정수를 한 모금 마시고, 멀리 서쪽으로 해가 넘어가는 풍경을 감상하면 걷기로 쌓인 피로가 말끔히 가실 것이다.

칼럼니스트 bluesunk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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