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머금은 자두, 행복 부르네…이창효展, 25일까지 이영갤러리
추억 머금은 자두, 행복 부르네…이창효展, 25일까지 이영갤러리
  • 황인옥
  • 승인 2018.03.04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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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만 먹으면 기뻤던 유년
그 기분 관객과 공유하고파
부감법·극사실주의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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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로 행복과 풍요를 기원하는 이창효 초대전이 이영갤러리에서 31일까지 열리고 있다.

의식 깊숙이 가라앉은 기억이라고 얕보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견고한 화석처럼 무뎌 보이지만 실상은 작은 터치 하나만으로도 현재로 소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창효에게 자두가 그랬다. 어느 날 처갓집 대문 앞에 심겨진 자두나무를 보며 자두에 대한 오래된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왔다. 그에게 자두는 ‘행복’의 다른 이름이었다.

“어린 시절 외갓집이 자두 과수원을 했어요. 방학만 되면 외가에 보내달라고 부모님을 조르고는 했죠. 붉은 자두가 가득 달린 과수원을 보고 맛있는 자두도 실컷 먹을 수 있었죠. 유년기 제 기억에 자두는 행복 그 자체였어요.”

소위 자두 작가로 불리며 자두를 그린 지는 9년 정도 됐다. 처갓집에서 본 자두가 머릿속을 맴돌다 어느 날부터 캔버스에 자두가 하나 둘 자리를 잡아갔다. 자두 작품 일련번호가 어느새 500번을 훌쩍 넘겼다. 혹자는 “자두가 특별할 것이 무엇이 있냐”며 “지겹지 않느냐”고 농을 건네기도 하지만 그는 요지부동이다. 자두를 그리면서 매일이 행복에 겨울 수 있으니 지겨울 이유가 없다.

“사람 얼굴이 제각각이듯 자두도 잘 관찰하면 같은 표정이 하나도 없어요. 붉거나, 노랗거나, 흙색 등 색상도 다양하고, 나뭇잎에 스쳐서 나타나는 흰색 분도 제각각이죠. 그릴 때마다 새로움을 느끼죠.”

이창효가 처음 자두에 투영한 정서는 어머니와 고향이다. 초기에 ‘기억 시리즈’를 통해 함지박이나 도자기, 바가지 등의 용기에 자두를 담아 그렸다. 작품은 누가 봐도 따스한 고향이 떠오를 만큼 투박하지만 정감으로 넘실댔다.

“캔버스 위에 한지를 바르고 자두를 그렸어요. 옛날 시골에서 사용하던 용기들도 자두와 함께 화폭에 구성했지요.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담아내기 위한 방법론이었죠.”

이창효의 자두가 대중성을 확보한 시기는 ‘풍요 시리즈’부터다. 화폭에 자두를 차고 넘치도록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인 부감법을 구사했다. 충만한 풍요를 최대화하기 위한 모색이었다.

자두-풍요
이창효 작 자두-풍요 100 X 50.Oil on canvas 한지. 2016 ‘풍요 시리즈’

‘풍요 시리즈’가 세상에 나오면서 그에게도 행복이 찾아왔다. 전시 요청이 쇄도하고, 작품이 곧잘 팔려나갔다. 작가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세계적인 작가가 되겠다는 욕심으로 작업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작은 성취에도 만족감은 컸다.

“작품이 팔려서 계속해서 작업을 할 수 있는 정도면 작가로서 만족하다고 생각했어요.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정도의 대중성이 따라주면 더 바랄게 없겠지요.(하하)”

자두 작가로 불리는데 이견은 없어 보인다. 그의 자두 사랑은 상상을 초월한다. 자두 첫 수확기가 되면 가장 탐스러운 자두를 수확해 작품의 재료로 활용하는가 하면 작업실 앞에 자두나무를 직접 심어 자두의 성장과정을 면밀히 관찰한다.

작업실 앞 자두나무를 심고 또 한 번의 변화가 찾아왔다. 빗방울을 머금은 자두인 ‘물방울 시리즈’의 탄생이다. “어느 비오는 날에 빗방울 서려 있는 빨간 자두를 보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어요. 위안과 힐링의 감정이 동시에 밀려왔죠. 그때부터 자두에 물방울을 그렸어요.”

이창효의 자두는 사족 없는 극사실화다. 현실의 자두보다 더 현실감 있게 자두를 표현한다. 여기까지면 특별할 것 없는 자두다. 하지만 그의 자두는 마음을 잡아끄는 묘한 지점이 있다. 바로 ‘관념성’이다. 그는 사실화에 다양한 기원과 철학을 동시에 추구한다. 부감법의 도입이나 풍성한 자두의 구성 등은 풍요와 행복 기원이라는 관념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요소들이다.

“자두에 추억을 대입하고, 부감법을 사용해 풍요를 극대화하고, 행복에 대한 기원을 담는 것은 제 내면을 표현한 것이죠. 사실적인 정물에 관념을 더했죠.”

이창효의 그림 철학은 거창하지 않다. 각박한 시대에 그림이 어려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누가 봐도 예쁘고 행복한 그림이면 자족한다. 어느 전시장에서 엄마 손을 잡고 온 어린 아이가 이창효의 그림을 보고 “자두 향기가 난다”고 말했을 때 그는 충분히 보상을 받은 기분이라고 했다.

“풍요와 행복을 기원하면서 벌레 먹고 생채기 난 자두를 그리면 어불성설이겠죠. 저는 거창한 작품 세계를 인정받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예쁘고 풍요로운 그림을 통해 사람들에게 위한과 힐링을 전하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전시는 25일까지 이영갤러리. 053-741-0370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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