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바람결에 스쳐가듯…속절없는 사랑이여
봄날 바람결에 스쳐가듯…속절없는 사랑이여
  • 윤주민
  • 승인 2018.03.07 1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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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꿩의바람꽃, 들바람꽃, 회리바람꽃.
(9)꿩의바람꽃 · 들바람꽃 · 회리바람꽃
피는 시기·색깔따라 생존전략 달라
새순이 돋아나기 전 봄 한철에 개화
여름철 설악산 고산지대서도 발견
꿩-전국 산지 어디서나 만날수 있어
들-경기·강원도 이북지역 등에 분포
회리-덕유산·소백산 등 정상부 서식
#봄바람을 따라 피는 바람꽃

지난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1월부터 2월 초순까지 20여 일간이나 매서운 한파가 덮친 탓인지 매화와 산수유 등 나무꽃의 개화도 한 달 가까이 늦어지고 있다. 풀꽃의 개화 소식도 2주 이상 늦기는 하지만 남쪽에서부터 봄소식이 북상하고 있다. 얼음이 녹은 물웅덩이에서 개구리 울음소리도 목청 높게 봄꽃을 재촉한다. 변산바람꽃을 필두로 하여 남쪽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을 타고 너도바람꽃도 만주바람꽃도 연이어 피어난다. 이제 나무의 새순이 돋아나기까지 바람꽃 세상이라 해도 좋을 만큼 갖은 바람꽃들이 필 것이다. 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저 멀리 남녘에서 몰고 오는 바람결을 타고 꿩의바람꽃, 들바람꽃, 홀애비바람꽃, 회리바람꽃, 태백바람꽃 등이 낙엽수림이 많은 깊은 골짜기와 산등성을 뒤덮을 것이다.

‘천상의 화원’을 가장 먼저 하얀 세상으로 수놓는다. 그러고 나면 노란색 계열, 붉은색 계열 등의 꽃들이 일제히 숲속을 뒤덮을 것이다. 이렇듯 꽃이 피어나는 시기와 색깔의 선택은 그들만의 독특한 생존전략이다. 낙엽수림의 새순이 돋아나기 전 봄 한철에 개화하여 수분을 하고 열매를 맺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봄은 누구보다 분주하고 화려하다. 또한 나비와 벌과 같은 곤충을 유혹하여 수분을 해야 하기에 식물의 몸체에 비해 비대칭적으로 꽃이 크다. 바람꽃은 봄살이식물이기에 관찰할 수 있는 기간이 짧다. 그렇지만 아네모네속의 바람꽃은 4~5월에 걸쳐 북상하는 봄과 함께 순차적으로 피어나며 여름철 설악산 고산지대에서 만날 수 있는 바람꽃으로 이어진다.

꿩의바람꽃
꿩의바람꽃


#꿩의바람꽃

바람꽃(Anemone)속의 대표주자가 바로 꿩의바람꽃이다. 우리나라 각처의 산지와 계곡 등 습기가 많은 곳을 좋아하며 변산바람꽃과 너도바람꽃이 한창이거나 꽃이 질 무렵 꿩의 발 모양과 흡사한 순백의 꽃봉오리가 나온다. 꿩의바람꽃의 유래에 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꽃잎처럼 생긴 꽃받침조각이 꿩의 깃털과 흡사하다거나 꽃대가 꿩의 다리와 닮았다거나 만개한 모습이 꿩처럼 아름답다거나 다양하다. 또한 봄이 오고 꿩들이 번식하는 계절에 꿩의 울음이 산속에 메아리치면 피어나는 꽃이라 하여 꿩의바람꽃이라 이름하였다고도 한다. 어쨌든 꿩의 아름다운 모습만큼이나 그 자태가 바람꽃 중에서는 으뜸이고 전국의 산지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바람꽃이 꿩의바람꽃이라 할 수 있다.

꿩의바람꽃은 쌍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과 바람꽃(Anemone)속의 여러해살이풀로 학명은 Anemone Raddeana Regal이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13종의 바람꽃속 중에서는 만주바람꽃과 함께 가장 먼저 핀다. 바람꽃의 개화시기는 지역에 따라 다소 편차는 있지만 변산바람꽃→너도바람꽃→만주바람꽃→꿩의바람꽃→회리바람꽃→들바람꽃→태백바람꽃→홀애비바람꽃→남방바람꽃→나도바람꽃→바람꽃의 순서로 핀다. 그러나 들바람꽃과 남방바람꽃 등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핀다. 꿩의바람꽃은 습기가 많은 양지나 반그늘, 계곡을 좋아하고 10~15㎝정도의 꽃대에 한 송이씩 핀다. 꿩의 발처럼 생긴 잎은 한줄기에 세 갈래로 갈라진다. 꽃은 흰색 또는 보랏빛이 감도는 흰색으로 크기는 대개 지름 3~4㎝정도이며, 꽃받침조각은 8~13개이다. 뿌리는 하나의 괴근과 같은 모양을 하고 지하 10㎝ 아래로 길게 뻗어있다. 뿌리는 죽절향부(竹節香附)라 하여 약용으로 쓰인다. 옹종(擁腫), 금창(金瘡), 사지경련(四肢痙攣), 풍한습비(風寒濕痺)에 효능이 있으며, 분말을 환부에 바르거나 고약처럼 고제로 붙인다. 꿩의바람꽃의 서식지로는 한국, 중국, 러시아 등지에 분포하며 북미대륙과 유럽에서도 자란다.

들바람꽃2
들바람꽃


#들바람꽃

사람도 그렇지만 식물도 꽤 낯가림이 많은 것이 있다. 들바람꽃도 수줍음을 많이 타는 꽃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사람의 발길을 타지 않은 호젓한 곳의 산지나 산 정상부의 바람과 햇볕이 잘 드는 반그늘을 좋아한다. 습도가 높고 토양이 비옥한 곳이어야 잘 자란다. 들바람꽃은 우리나라 중부 이북의 산지에 주로 서식하는데 경기도와 강원도 및 그 이북지역에 분포한다. 4월말~5월초가 되면 중부 이북의 산속에 봄바람이 찾아들고 새순이 막 돋아날 무렵 낙엽수림의 가장자리에 무리지어 꽃을 피운다. 청태산, 소백산, 태백산, 방장산 등지의 산 정상부는 들바람꽃으로 ‘천상의 화원’을 이룬다.

들바람꽃은 산지나 계곡을 좋아하지만, Anemone amurensis (Korsh.) Kom.란 학명이나 ‘들바람’이란 이름처럼 바람이 많이 드는 습한 곳의 평원도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중부이북 지방, 만주, 우수리, 아무르 등지에 서식하며 종소명에도 아무르(amurensis)가 붙는다. 모데미풀을 찾아 소백산자락을 헤매다가 어느 중턱에서 만난 이름모를 꽃이, 홀애비바람꽃과 얼레지를 쫓아 청태산을 오르다가 산정 부근에서 나를 풀썩 주저앉게 만들었던 순백의 하얀 신부가 바로 들바람꽃이다. 바람꽃류의 식물이 대개 그러하듯 들바람꽃도 4~5월에 꽃을 피우고 6~7월에 열매를 맺고 나면 생명을 다하여 고사하게 된다. 꽃을 만날 수 있는 것은 4월 중순에서 5월 중순의 짧은 기간이다.

회리바람꽃
회리바람꽃


#회리바람꽃

회오리치는 바람 속에 노란 꽃송이 하나가 들어 있는 듯한 바람꽃이 있다. 회리바람꽃이란 것이 그것이다. 회리바람꽃은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바람꽃 중에서 가장 작다. 다섯 장의 연두색 꽃받침이 있으나 모두 뒤로 젖혀져 있기 때문에 노란 수술만 보여서 동그란 공과 같다. 회리바람꽃의 유래는 정확히 특정돼 있다 않다. ‘회리’라는 이름이 ‘회오리’라는 이북 방언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이 꽃이 처음 발견된 곳 평안남도 대동군 청룡면 회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이와 같이 이 꽃은 강원도와 강원도 이북에 주로 자생하기 때문에 만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보현산, 덕유산, 소백산 등의 산 정상부에서는 간혹 만날 수 있는 꽃이다.

회리바람꽃은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바람꽃류 중에서는 특이하게 노란색 혹은 흰색의 작은 꽃이 핀다. 한반도에 주로 자생하는 특산식물이자 멸종위기식물1급으로 지정된 희귀종으로 강원도 이북의 산지에서 주로 자란다. 미나리아재비과 바람꽃속의 여러해살이풀로 학명은 Anemone reflexa Steph. ex Willd.이다. 다른 바람꽃과 같이 숲속 그늘진 곳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는 가지가 갈라지지 않으며, 높이 15~30㎝이다. 꽃은 4~6월에 줄기 끝에 1~4개씩 피며, 주로 노란색이다. 꽃자루는 길이 2~3㎝이며, 겉에 털이 난다. 포엽은 3장이며, 3갈래로 완전히 갈라진다. 꽃받침잎은 5장으로 노란색이고, 꽃이 필 때 뒤로 완전히 젖혀진다. 암술은 녹색을 띤다. 우리나라 중부 이북과 몽골, 일본, 중국에 분포한다. 국내에 분포하는 바람꽃속 식물 가운데 가장 꽃이 작다. 이다. 꽃은 4-6월에 피고 열매는 7월에 익는다.

바람꽃 가운데 아직 학명이 붙지 않은 태백바람꽃이란 것이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강원도 태백에서 처음 발견되어 ‘태백바람꽃’이라 명명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들바람꽃의 특성과 회리바람꽃의 특성을 함께 갖춘 것으로 두 종의 교잡종으로 알려져 있다. 꽃잎처럼 보이는 꽃받침이 뒤로 젖혀져 있고 꽃잎과 잎의 모양새는 들바람꽃과 흡사하다. 서식하는 생태환경은 들바람꽃처럼 낙엽수림의 가장자리와 산정부의 바람이 잘 드는 곳을 좋아한다.

#바람꽃(Anemone)의 전설

아네모네(Anemone)는 ‘바람’을 뜻하는 그리스어 아네모스(Anemos)에서 유래한다. 그래서 ‘바람의 딸’이라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바람의 신 제프로스로부터 사랑을 받아 피는 꽃이 아네모네라고 한다. 꽃의 여신 플로라(비너스)의 시녀 중에서 아네모네라는 시녀(요정)가 있었다. 미모가 뛰어난 아네모네는 바람의 신 제프로스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제프로스는 플로라의 남편이었다. 플로라는 두 사람이 사랑하는 것을 알고 두 사람을 떼어놓기 위해 아네모네를 멀리 떨어진 포모노 궁전으로 보냈다. 그러나 제프로스는 플로라의 눈을 피하여 아네모네가 있는 곳을 찾아가서는 사랑을 나누곤 했다. 자신의 곁에서 사라지는 일이 잦아지자, 어느 날 플로라는 제비로 변신하여 두 사람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 플로라는 둘이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을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아네모네를 꽃으로 만들어버렸는데 이 꽃이 아네모네이다. 아네모네가 꽃이 되어도 바람의 신 제프로스는 그녀를 그리워하며 잊지 못했다.

그래서 봄이 되면 언제나 부드러운 바람을 그녀의 곁에 보내 꽃이 피게 하였다. 그래서 바람꽃(windflower)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영명 ‘windflower’와 ‘바람꽃’이 일치하는 것은 영명을 그대로 번역해서 받아들인 것인지 우연히 봄바람에 하늘거리며 피는 바람꽃의 속성이 우연히 일치해서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요정과 바람의 신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애절한 사랑처럼 아네모네의 꽃말은 ‘사랑의 괴로움’, ‘허무한 사랑’, ‘단념’이다.

칼럼니스트 hysong@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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