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단체장의 출판기념회는 고려해 볼 여지가 있다
현직 단체장의 출판기념회는 고려해 볼 여지가 있다
  • 승인 2018.03.14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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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형(행정학 박사)


능력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권의 책을 집필하는데 있어 엄청난 산고(産苦)를 겪는다. 그만큼 책을 한 권 쓴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그래서 한 권의 책을 낼 때 이를 축하하기 위해 가족과 지인들이 모여 책 얘기를 하고, 다과를 나누는 작은 문화 활동이 바로 출판기념회이다. 이 자리에서 저자가 초청한 사람들에게 자필 서명을 한 책을 한 권씩 선물하고, 참여자들은 답례로 책값에 조금 보태어 내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다. 그런데 이런 출판기념회가 일부 정치인들에 의해 변질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요즈음 선거철만 되면 입후보자들이 개최하는 출판기념회나 북 콘서트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바쁜 정치활동속에서 언제 글을 써 책으로 출판하는지 존경스럽다. 선거를 앞두고 갖는 출판기념회는 공직선거법에서 허용하고 있는 합법적인 활동이다. 공직선거법에 의해 선거 90일 이전에는 정치인 출판기념회가 금지되기 때문에 이번 6 ·13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입후보자들이 출판기념회를 열려면 3월15일 이전에 끝내야 한다. 따라서 지난 3월10일 전국적으로 많은 출판기념회가 열렸다고 한다. 우리 지역에서도 이날 현직 단체장을 비롯한 예비후보자 등 5명이 동시에 출판기념회와 북 콘서트를 개최하였다.

선거에 입후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동안 자신이 발표한 글이나 혹은 정치철학과 정책, 정치를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 성장과정과 배경 등을 묶어서 책으로 내고 출판기념회를 하는 것은 자신을 홍보하는 좋은 도구이다. 특히 정치 신인들에게 있어서는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고, 일정한 선거자금도 확보할 수 있으며, 지지자들을 모으는 효과를 노릴 수 있어 매우 긍정적이다.

그러나 선거에 다시 출마하는 현직 단체장들의 출판기념회는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오로지 자신의 지지세 과시나 선거자금을 모으는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출판기념회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책을 무료로, 또는 정가에 비해 싸게만 판매하지 않는다면 선거법에 저촉되지 않기 때문에 이들에게 출판기념회는 선거자금을 무한대로 확보할 절호의 기회가 된다. 즉 출판기념회나 북 콘서트는 이들에게 법에 구애받지 않고 선거자금을 무한정 모금할 수 있는 좋은 통로가 되고, 지역주민들에게 자신의 치적을 홍보할 수 있으며, 세(勢)를 과시하며 지지 세력을 확산할 수 있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노릴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현직 단체장들은 이미 한번 주민들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다. 현직 단체장이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면서 초정하였을 때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자신의 소신과 정책을 홍보하는 출판기념회라기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이 있다고 오해를 받는 이유이다. 현직 단체장은 정치 신인들과 달리 출판기념회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자신을 홍보 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실제 정치신인들과 달리 이들의 출판기념회에는 수천 명이 몰려 세를 과시하면서 북새통을 이루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소위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의 경우 초청받았을 때 불응하기가 매우 어렵다. 언제 어떻게 이들에게 밉보여 어떤 화를 당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눈도장을 찍어야 하거나 이른바 보험을 들어야 하는 사람들에겐 출판기념회 초대장이 고지서나 다름없는 것이다. 또한 해당 자치단체의 공무원들도 눈도장을 찍기 위해 참석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일부 단체장들은 절대 공무원들은 참석하지 못하게 한다고 하지만 과연 얼마나 지켜질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사정이라면 현직 단체장의 출판기념회는 공직선거법이 허용한 본래의 취지를 악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만약 더 이상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 단체장이 출판기념회를 한다고 하여도 사정이 이러할지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현직 단체장들의 출판기념회가 문제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선거철만 되면 논란이 되고 있다. 따라서 국민권익위원회가 현직 공직자가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는 경우와 비공직자가 개최하는 경우를 명확히 구분하여 입장을 발표하였지만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현직 단체장들의 출판기념회를 못하게 할 수는 없지만 이것이 합법적인 뇌물 창구가 될 수 있다는 소지는 충분한 것이다. 따라서 자금 마련 행사로 변질되고 있다는 오해를 받고 있는 재출마 의사가 있는 현직 단체장의 출판기념회는 정치신인들과는 달리 선거일 1년 전이나 6개월 전에 개최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제한하는 것이 어떨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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