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빛 화폭에 담아낸 존재의 역동성
푸른빛 화폭에 담아낸 존재의 역동성
  • 대구신문
  • 승인 2018.03.17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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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내달 14일까지 리안갤러리 ‘후기단색화’전

손바닥·손가락에 물감 묻혀

캔버스에 바르는 방식 선택

“언어적 한계 몸짓으로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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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마린 블루로 한국적인 정서와 존재의 본질을 담아내는 김춘수. 그와 후기단색화가를 초대한 전시가 리안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흔히 밤을 문학적으로 ‘푸른다’고 표현한다. 고요한 암흑의 검은 밤에 대한 은유로 침잠하는 푸른 밤을 대입시키곤 한다. 그러나 과학적 측면에서 보면 비약이다. 검정과 푸름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푸른 색 중에서도 광채가 가장 아름다운 울트라마린 블루 (Ultramarine blue)만 고집하는 김춘수는 조금 다른 견해를 내놨다. 푸른색은 검은 색이 아닌 먹색과 같다는 것. 그래서 밤의 색으로 적격이라고 했다.

“먹은 블랙과 다르다. 검정이라기보다 모든 색을 포함하는 색이다. 내게 푸른색은 먹과 같은 개념이다. 푸른색은 모든 색을 포용하는 색이다.”

울트라 마린 블루는 블루 중에서도 광채가 가장 아름다운 색으로, 르네상스 화가들이 가장 선호한 색이다. 15세기 이탈리아 상인에 의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유럽으로 수입됐다는 의미에서 울트라마린(Ultramarine), 즉 ‘바다 저쪽에’라는 이름을 붙였다.

후기 단색화가로 분류되는 김춘수는 울트라마린 블루만 고집한다. 세상의 모든 색을 품어 안는 포용성에 마음을 뺏겨 선택했다. 여기에 단어의 뜻 ‘바다 저쪽에’라는 관념적인 의미도 더해졌다. 김춘수에게 울트라마린 블루는 ‘저 너머의 이상향’과 동일시다.

“울트라마린 블루는 중의적인 색이다. 푸른색의 물성과 ‘바다 너머’의 이상향이라는 관념성모두를 포괄한다. ‘이상향’만 놓고 봐도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점에서 중의적이다.”

붓 대신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그린다. 그린다기 보다 몸에 실린 정신적 기운을 손에서 화폭으로 옮긴다. 몸 그림의 장르는 추상. 켜켜이 쌓인 정신성을 역동적인 추상의 형태로 드러낸다. 최근에는 추상과 구상의 중간지대를 내달린다.

“초기에는 형상을 배제했는데 최근에는 형상을 전혀 무시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형상의 서술적 힘을 인정한 것이다.”

붓 그림을 언어적 서술이라고 했다. 반면에 손 그림은 ‘소리’라고 했다. 그에게 ‘소리’는 곧 ‘몸짓’이다. 이상향의 공간을 드러내는 입장에서 언어의 한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더 본질적인 것을 찾다가 만난 것이 ‘몸, 즉 소리’라고 했다. 그는 몸 깊은 곳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행위가 소리로 담기고, 그것을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본질로 확장한다.

“사랑은 떨림, 눈빛, 간절함 등 언어가 아닌 표현과 행동에서 더 정확하게 드러난다. 언어의 한계성은 분명히 있다. 몸짓과 행위는 언어 이전의 본질을 드러내는 좋은 방법론이다.”

흘러내리는 물성이 그대로 화폭에 담겨 언뜻 보면 수채화 같다. 기름을 많이 쓴 결과다. 흘러내린 물성이 한치의 오차없는 완벽함과 거리가 있어 오히려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소설보다 시에 가깝다고 했다. 구조나 논리적 완결성보다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따뜻함을 추구하는 점에서 그렇다. 여기에는 먹이라는 동양의 정신적 바탕이 있다.

“중국 수묵화는 화려하고 일본 수묵화는 단순하다. 그에 비해 한국 수묵화는 그 중간이다. 어설픈듯 하지만 인간적이고 자연스럽다. 인위, 인공, 차가움과 거리를 둔다. 나는 단순 추상을 추구하지만 서양의 미니멀이 아닌 동양 수묵화의 미덕을 담아내고자 한다.”

추상이지만 방향성은 가지고 간다. 굳이 설계도를 만들지 않아도 몸으로 체화된 설계도로 작업을 시작한다. 그렇더라도 완벽하게 계획대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그때그때의 감정 상태가 설계도에 끼어들기 때문이다.

“체화된 설계도를 가지고 작업을 시작하지만 감정의 변화에 따라 들쭉날쭉 변한다. 그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자연스럽고 솔직한 것이 인간적이라는 믿음이 있다.” 김춘수를 포함한 후기단색화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리안갤러리 전시는 4월 14일까지.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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