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드름은 ‘순리’ 그 자체”… 노열, 서울 세컨드 에비뉴갤러리展
“고드름은 ‘순리’ 그 자체”… 노열, 서울 세컨드 에비뉴갤러리展
  • 대구신문
  • 승인 2018.04.0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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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물감 발라 뒤집어 건조

중력 순응하는 인조 고드름 재현

“자연적 삶 통해 인간 소외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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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열


작업실로 쓰고 있는 폐교 운동장이 싱그러웠다. 돋아나는 새싹들의 향연이 한창이었다. 그러나 작업실은 난로와 선풍기가 가열차게 돌아가며 계절을 모호하게 했다. 아직은 이른 봄, 난로까지는 이해됐지만 선풍기는 이르다 싶었다. 작가 노열(노병열)이 “고드름을 키우고 있다”며 피식 웃었다.

다양한 작업을 발표해 왔지만 그래도 노열 하면 ‘고드름’ 연작이다. 90년대 말 ‘물감-고드름 시리즈’에서 시작해 2005년 이후 ‘물결(wave)’ 연작을 거쳐 2015년 ‘흐름(flow)’ 연작, 그리고 2017년 ‘하얀 흐름(white flow)’으로 변화해왔다.

고드름은 페인트와 아크릴 물감 그리고 리퀴드(liquid)를 섞은 후 캔버스에 바르고, 뒤집고, 말리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한 후에야 탄생한다. 지구가 물체를 지구의 중심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힘인 중력을 이용한 작업이다. 고드름 작업은 노열의 남다른 작업 속도로부터 왔다.

“남들과 비교해 유난히 작업속도가 빨랐어요. 어느날 제 속도와 작품과의 연관성을 따져보게 됐어요. 마침 그때 동료화가가 캔버스에 물감을 중첩해 보라 하더군요. 변화가 절실하던 시기여서 권유대로 해죠. 그랬더니 캔버스 모서리에 의도치 않은 고드름이 생긴 것을 발견하고 ‘이거다’ 했죠.”

고드름을 만들 수 있는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중력의 영향을 받는 땅 위의 존재는 모두가 가능하다. 캔버스 모서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고드름을 캔버스 중심에서 키워낸 이후 주전자나 옷걸이 등으로 작업이 확장되고 있다. 작업과 중력이 만나면 여지없이 고드름 꽃이 피어났다.

이번 전시에서 고드름이 훨씬 드라마틱졌다. 소멸의 흰색과 생성·성장의 청색에 집중했던 단조로운 색채감에서 벗어나 핑크와 노랑 등으로 다채롭게 변화했다. 스테인레스 그릇에도 새롭게 고드름꽃을 피웠다.

“꽃들의 향연이 이어지는 봄의 절정을 화폭에도 옮기고 싶어 고드름을 밝게 칠했어요. 스테인레스 그릇은 먹고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간에 대한 은유에요. 일종의 생존그릇이기도 하고, 허기진 영혼에게 바치는 ‘정신의 그릇’이기도 하죠.”

중력은 자연법칙으로써 순행이다. 인간사를 자연법칙으로 바라보면 역행이 적지 않다. 특히 물질문명 앞에서 늘 나약했다. 욕망은 끝없이 이어졌고, 역행을 마다하지 않았다. 결과는 참담하다. 자연파괴, 인간소외, 인간성 상실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극복할 방법은 무엇일까? 노열은 자연의 흐름에 따르라고 한다. 그는 중력으로 만든 고드름을 이용해 자연순응적 삶으로 돌아갈 것을 강변한다.

“이제는 고통을 끊고 중력을 따르듯 자연의 순리에 따라 소통하며 평화롭던 시절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어요.”

노열작-누구를위하여
노열 작 ‘누구를 위하여…’


중력을 이용한 작업이다. 인위보다 자연 현상이 더 강하게 개입할 여지가 높다. 초기작업에는 그런 현상이 더 강했다. 작가의 의도가 중력에 제압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제는 인이 배였다. 인위와 중력의 균형을 유지할 수준은 됐다. 20년이나 했으니 그럴 때도 된 것이다.

“오래하다 보니 이제는 적절한 조정이 가능해졌어요. 그래도 우연에 의한 의외성에 더 큰 감동이 오는 것은 어쩔 수 없어요.”

그에게 예술가는 중간지대의 사람들이다.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닌 중간지대를 살며 희미하게 보이는 현상을 선명하게 포착하고, 진득하게 바라보고, 이해한 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는 매개자다. 그는 매개자의 태도는 계속해서 유지하되, 작업의 형식이나 방식은 계속해서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술가는 미처 보지 못하는 우리시대의 자화상을 포착하고, 드러내 보여주는 존재들이죠. 그럼으로써 사회변화를 유도하지요. 저는 고독하지만 그 역할을 계속해서 해 나가고 싶어요.” 전시는 서울 세컨드 에비뉴갤러리에서 6일부터 5월 31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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