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우리 또한 힘 빠진 늙은 늑대
<대구논단>우리 또한 힘 빠진 늙은 늑대
  • 승인 2010.01.1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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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 교육학박사)

어느 시대에나 힘 빠진 늙은 늑대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 늙은 늑대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면 참으로 참담해지고 만다. 늙은 늑대에게 당한 순수한 영혼들은 얼마나 많이 우리들을 원망했겠는가? 참으로 원통해 했을 것이다.

어느 곳에 늙은 늑대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눈도 나빠져서 먹을 것을 제대로 구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늑대는 먹을 것을 찾아 헤매다가 토끼들이 모여 있는 풀밭에 가게 되었다. 토끼들이 깡충거리는 모습이 여간 맛있게 보이지 않았다.

`옳지, 요놈들을 잡아먹어야겠구나.’ 늑대는 웃음을 지으며 슬금슬금 다가갔다. 그러나 쉽게 잡힐 토끼들이 아니었다. 날카로운 이빨은 없었지만 긴 귀가 있어 남보다 더 잘 들을 수 있었고 몸이 가벼워 더 빨리 달릴 수 있었다.

“앗, 늑대다!” 망을 보던 토끼 한 마리가 큰 소리로 외쳤다. “뭐? 늑대라고!” 토끼들은 일제히 한 방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본능적인 수준이었다. 늑대는 힘껏 뒤따랐지만 재빠른 토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헐떡거리며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안 되겠구나. 다른 수를 쓰자.” 곰곰이 생각하던 늑대는 둑 밑에서 동쪽을 향해 입을 벌리고 한 발을 들고 서 있었다. 그러니까 턱은 둑에 얹은 채였다.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그래도 토끼들은 다가오지 않았다.

힘이 빠진 늑대는 밤이 되어 아무도 보지 않으면 턱을 내리고 잠을 잤다. 그러다가 낮이 되면 또 그렇게 하고 있었다. 턱은 빠지는 것같이 아팠고 다리도 저렸지만 꾹 참았다.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토끼들이 장난삼아 다가왔다. “아저씨, 왜 한쪽 발을 들고 있나요?” “응, 땅이 무너질까 봐 받치고 있어. 땅이 무너지면 너희들이 위험하잖니?”
“네에, 우리들을 위해서 라고요?” 철없는 어린 토끼들이었지만 그 말은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런데 왜 동쪽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나요?” “응, 햇빛을 받아먹고 있어. 나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햇빛만 받아먹는 착한 늑대거든!” “그런데 왜 가만히 있어요?” “응, 나는 항상 기도 중이기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어.”

“아, 그럼 아저씨는 위험하지 않네요?” “그럼! 나는 착한 늑대야. 암.” 이 소문은 널리 퍼져나갔다.
늙은 토끼는 믿지 않았지만 어린 토끼들은 겁도 없이 늑대 앞에서 풀도 뜯고 장난도 쳤다.
그 뒤 이상한 일이 생겼다. 토끼들이 하루 한 마리씩 없어졌다. 꼭 하루 한 마리씩만 없어졌기 때문에 누가 없어진 줄도 몰랐다.

그런데도 토끼들은 늑대 둘레에서 계속 장난을 치곤했다. 물론 이 늑대의 행각이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또한 이 이야기 속의 늑대나 토끼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토끼들처럼 어리석은 짓으로 자신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시류에 휩쓸려 후회할 일은 또 얼마나 많이 하는가? 옆에서 잘못을 저질러도 그저 본체만체 하지는 않았던가? 원망만 앞세웠지 언제 한번 제대로 앞장서서 고치려 했던가?

우리는 스스로 정당하게 행동한다지만 대부분 우리들 자신의 목적이나 이익을 앞세우지 않았던가? 시대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따라가지 못하고 그저 우리에게 던져진 알량한 권위를 앞세워 자신만을 챙기지는 않았던가?

세상에는 수많은 눈이 있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아니 더 무서운 것은 우리 자신이 우리를 부끄럽게 여길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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